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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7


3일째 되는 날 준석은 약속대로 진거름달구지제작정형을 돌아보고 총화하였다.

10개 작업반이 계획량을 전부 만들어놓았다. 철판을 구부려 용접한것도 있고 도람통에 구멍을 내여 만든것도 있었다.

박영순작업반은 석대를 만들어 주목을 끌었다.

이튿날부터 흙깔이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준석은 아침일찍 어머니가 짬짬이 모아두었던 산분을 질통에 가득 담아지고 담당작업반인 3반으로 나갔다.

흙깔이포전현장에는 벌써 붉은 기발들이 줄느런히 꽂혀 바람에 펄럭이고 곳곳에 이동속보판들이 세워져있었다.

제대군인인 젊은 작업반장 양석찬이 마주 달려와 보고했다.

《관리위원장동지! 3작업반 진거름수송대는 첫새벽에 떠나고 초급일군이하 작업반전원이 수로파기현장에 집결하였습니다.》

《좋소. 진거름이 도착하기 전에 바닥파기를 와닥닥 제끼기요. 초급일군들은 나와 함께 앞장에서 달려봅시다!》

《알았습니다!》

양석찬은 달리기경기에 나선 선수마냥 흥분해서 대답하고는 농장원들이 밀집되여있는 굴착작업장으로 냅다 달려가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준석이도 지고온 거름을 논판 한가운데 쏟고 그리로 달음쳐갔다.

거름을 담는 사람들과 나르는 사람들이 서로 갈라져 들끓기 시작했다.

수로에서부터 가까운 곳은 이미 흙깔이를 한 뒤이므로 현재 하는 논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준석은 삽질을 하는 사람들을 독촉하여 질통에 흙을 담기 바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뒤로 작업반장, 세포비서, 기술원, 분조장들이 승벽내기하며 따라섰다. 그 바람에 농장원들도 너도나도 와와 드달리며 떠들썩 끓어번졌다.

그래도 어차피 속도차이는 나지기마련이여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서로 엇갈리며 피대줄 돌아가듯 륜환선을 형성하였다. 말그대로 《질통지고 달리기》경기였다.

준석은 엇갈리는 사람들속에서 별스럽게 수건을 푹 눌러쓰고 자기와 마주설 때마다 얼굴을 돌리군 하는 녀인을 보게 되였다.

처음에는 내우를 잘 타는 녀성인가부다 하고 별치 않게 생각했는데 매번 머리를 숙이거나 돌리는 그 행동이 하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양석찬반장과 나란히 달리며 슬그머니 물었다.

《저기 저 수박색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다싶이한 녀자가 대체 누구요?》

양석찬은 준석이 가리키는쪽을 흘끔 돌아보더니 이상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쌍둥이엄마가 오늘 웬일이야? 꼭 옛날 새각시처럼 잔뜩 뒤집어쓰구…》

《아하, 그렇댔군, 허허…》

준석은 쌍둥이엄마라는 말에 대뜸 깨도가 되여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관리위원장동지, 저 녀자를 아십니까?》

《그럴만한 일이 있소. 내 우연히 저 집에서 씨암닭을 대접받을번 했던걸 아쉽게 됐거던, 허허…》

《어떻게 말입니까?》

양석찬은 구미가 동해 바싹 달라붙는다.

《아직은 비밀이요.》

《비밀이라구요?》

《그럼, 누구도 모르게 만났던 일이니까.》

준석은 짐짓 소리를 죽여 말하고는 눈을 끔벅해보였다.

《씨암닭?… 흔히 사위를 맞을 때 씨암닭 잡아준다는데…》

양석찬의 호기심은 점점 더해가는 모양이였으나 준석은 오히려 제편에서 캐물었다.

《쌍둥이엄마이름이 뭐라구?》

《정춘화라구… 합니다.》

《세대주 없은지 얼마나 됐소?》

《한… 13년 됐다구 하던지…》

《혼자 어떻게 생활하는지 더러 가보군 하오?》

《살림살이야 뭐 나무랄데없지요. 음식 잘하구 깨끗하구, 손도 크고. 흠이라면 이따금 지각하는것이 흠이랄지.》

《그가 왜 그러는것 같소?》

준석의 물음이 롱조로부터 점차 심각한 색조를 띠기 시작하자 양석찬은 얼떠름해하며 대꾸했다.

《거야 뭐 오래동안 혼자 살다나니… 쌍둥이아들을 내세우려는 책임감이 그런 이악성을 낳았다고 볼수 있지 않습니까?》

《책임감? 이악성? 반장동무, 혼자 사는 녀인을 동정하고 리해해주고 어떻게 하나 도와주자고 하는 그 마음은 고맙지만 원칙을 떠난 인정이 진정으로 그를 도와주는것일가?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소?》

《사실 그 아주머니가 그렇게 극성스레 돼지를 기르는것은 제살림이나 늘이자고 해서가 아닙니다.

두 아들을 초소에 세운 어머니다보니 마음은 늘 군대들한테 가있지요. 돼지를 길러 군대원호하는 재미로 사는 녀인이랍니다.》

준석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기만 했다.

한참만에야 주먹을 들어 양석찬의 가슴을 툭 쳤다.

《어째서 그 말을 이제야 하는거요?》

《춘화동문 자기를 내세우고 칭찬하는걸 질색하는 성미랍니다. 말도 못내게 하는걸요.》

양석찬은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반장동무, 우린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있구만.》

준석은 마음이 즐거워져 껄껄 웃었다.

그러는새에 흙더미는 산처럼 커지고 두대의 진거름달구지도 도착하였다.

삽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흙더미가운데 원형으로 골을 파고 거기에 진거름을 푹푹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잠간사이에 그것을 흙으로 덮었다.

이 일이 끝나자 준석은 반장을 시켜 휴식을 선포했다.

땀을 철철 흘리며 숨이 턱에 닿게 뛰여다닌 사람들이 그 자리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세포비서가 어느새 갔다왔는지 커다란 록음기를 준석의 앞에 가져다놓았다.

그뒤로 수박색수건을 쓴 정춘화가 물지게를 지고 나타났다.

땀흘린 사람들이 환성을 올리며 일어나 물초롱곁에 모여들었다.

이것은 사전에 박정운당비서가 귀띔해준것이였다.

준석은 어깨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게 가슴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며 일어섰다.

《에― 여러분! 제가 오늘 포전오락회책임자로 출연하는데 대하여 찬성하시는분들은 숨을 쉬여주십시오.》

지쳐있던 사람들이 좋아라고 박수를 치며 와하 웃음을 터뜨렸다.

준석은 그들을 향해 모두거리로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만장일치로 제가 책임자로 당선이 되였습니다. 그럼 첫 순서로…》

이때 군중속에서 《사회!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오락회책임자의 자격시험으로 먼저 책임자의 노래부터 들어보자는 의견입니다.》라는 누군가의 제기에 이어 《좋습니다!》 하는 합창소리가 뒤따랐다. 준석은 기꺼운 마음으로 대중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주먹을 마이크처럼 쥐여 입가에 대고 새납소리같은 목청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백리벌 넓은 들에

가을 가는 길 하두 바빠

소방울이 왈랑절랑

새벽안개 헤치누나


관객들이 들썩들썩 어깨를 흥떡이는데 춤을 즐기는 어떤 축들은 벌써 뒤잔등에 혹을 만들어달고 움씰움씰 곱새춤을 추며 나왔다.

오락회는 곧장 흥겨운 춤판으로 번져졌다.

세포비서가 제꺽 록음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옹헤야》가 흘러나온다. 진짜새납소리다. 건드러지면서도 박력이 있는 경음악장단에 춤가락이 절로 나온다. 춤가락에 파악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목석이 아닌 다음엔 가만히 듣고 앉아있을수가 없다. 뚝바우같은 남정들도, 새침데기처녀들도, 점잔빼던 녀인들도 두팔을 번갈아 올렸다내렸다, 량옆으로 펴들고 너울너울하다가는 제멋에 겨워 손벽을 치기도 하고 이리저리 발을 구르며 돌아가기도 하는데 하여튼 출줄 모르는 막대기춤은 또 그것대로 웃음을 자아낸다.

참을수 없다는듯 정춘화도 뒤집어썼던 보자기를 활 벗어들고 춤판에 뛰여들었다. 그 유표한 수박색수건을 기발처럼 패기있게 휘두르며 둥실둥실한 몸을 제법 《예술적》으로 흔들어대는것이 마치 이 춤판의 진짜 춤군은 자기노라고 시위하는듯싶었다.

잦은가락장단이 끝나고 유유히 흐르는 시내물처럼 느리고 서정적인 《노들강변》이 시작된다.

어느새 쌍쌍이 짝을 맞춘 남녀농장원들이 다정히 한손을 맞잡고 벌려서서 휘휘 늘어진 버들가지마냥 자유로이 률동을 펼친다.

준석은 우연인것처럼 정춘화와 짝을 짓고 춤을 추었다. 그 녀자의 옹색스런 마음을 풀어주고싶어서였다.

《춤을 아주 잘 추는구만요. 농장예술소조공연에 나가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관리위원장동지를 몰라보구 집일까지 시켜먹은 이 푼수없는 녀자를 욕하시는거지요?》

《아하, 그러구보니 제 그때 일해준 〈품값〉을 아직 받지 못했군요.》

《그럼 약속대루 오늘 점심때 저의 집에 들려주시겠어요?》

《그러지요. 하지만 씨암닭 잡을 생각은 마셔야 합니다.》

《그건 왜요?》

《씨암닭값이 비싸니까요.》

정춘화는 피씩 웃었다.

《저를 그렇게 린색한 녀자로 보신다는거군요?》

《그렇지 않구요, 돼지를 길러 어디로 보낸다는 말 한마디가 아까운 춘화동무가 아닙니까?》

가락에 맞추어 한들거리던 춘화의 손이 허공에서 뚝 멎었다. 크고 검은 눈에 당혹감이 어려있었다.

《어마나, 누가 그걸?》

《아주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죄합니다.》

준석은 진정으로 절절하게 말했다.

《제 아들들에게 보내는것인데 다시는 그런 칭찬을 하지 말아주세요.》

정춘화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돌아섰다.

힘찬 무용곡이 계속 울리였다.

열정적인 춤동작이 서로서로의 감정을 한껏 돋구어주었다.

오락회가 끝나자 농장원들은 한껏 앙양된 기세 그대로 작업에 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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