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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8


10일전투가 끝난 다음날은 휴식일이였다.

금혁이 자기 방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탁상전자시계의 현시판에는 7시 10분이란 수자가 깜빡이고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금혁은 세면장으로 나가면서 애꿎은 어머니에게 볼부은 소리를 던졌다.

《야, 어머니, 왜 아직까지 날 깨우지 않았어요? 참.》

아래방의 경대앞에서 얼굴에 분화장을 하던 유미옥은 웬일이냐는듯 눈을 떼꾼하게 뜨고 아들을 돌아보았다. 그 녀자는 50이 다된 나이지만 10년은 더 젊어보인다.

《아니 야, 오늘이 농장적인 휴식날이란걸 잊은게 아니가? 어찌다 쉬는거 〈부위원장동지〉두 직일근무나갔길래 실컷 자라구 우정 놔두었다. 왜?》

푸푸 뜨락을 물로 한벌 적시며 세면을 하는 금혁이 대답할 입이 없었다. 실은 어머니에게 터놓지 못할 리유이기도 했다. 오늘 아침 8시에 수향이와 시험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것이다.

세면을 하고 나온 그는 슬쩍 딴전을 피웠다.

《어머닌 내가 수리분조장이 된걸 잊은게 아니예요? 그리구 관리위원장동지로부터 대용연료도입을 빨리 완성할데 대한 과업을 받았다는것두.

말하자면 농장의 기본전선을 맡았단 말이예요. 휴식날이라구 어머니처럼 쉴수 있겠어요?》

《에그, 알량한 수리분조장이나 돼가지구, 쯧쯧…》

미옥은 대견치 않다는듯 혀를 차고는 호― 한숨을 지었다.

남편이 대리관리위원장을 하면서 농장에 금혁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서둘러 데려오지 않았던들 지금쯤 아들은 도농업과학분원의 기계화연구소에서 큼직한 일을 맡아하고있을게 아닌가? 그러찮아도 도에 배치된걸 실뚱해하는 아들을 가까스로 눌러놓았는데 아버지란 사람이 소장과 사업까지 해가며 지원포를 쏴주니 철없는것이 얼씨구좋다 하고 내려왔던것이다.

금혁은 어머니가 떠주는 닭알국에 밥 한공기를 말아 급히 퍼먹고는 준비해두었던 공구함통을 찾아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손목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며 걸음을 다우치는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 널뛰듯 하였다.

참으로 이상했다. 만났다헤여진지 몇시간밖에 안되는데도 수향을 다시 만날 때마다 매양 새로 만나는 감정이니 말이다. 머루알처럼 정기도는 까만 눈이며 항시 발랄한 웃음이 찰랑거리는 입귀의 볼우물이며 애기버들잎을 맞붙인것 같은 입술사이로 반짝거리는 동글동글한 이발까지도 어쩌면 그리도 어여쁘고 정겨운지.

금혁은 이때까지 사랑에 대한 이렇다할 일가견이나 리상을 따로 가져본적이 없었다. 중학시절과 마찬가지로 대학때에도 오직 책밖에 몰랐고 그 어떤 처녀에게 왼심을 써본적도 없었다.

이성에 대한 생각을 하려면 아직 멀다는 관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생문제를 대학졸업이후로 밀어둔 까닭이였다.

때문에 그는 중학시절부터 자기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호의를 베푸는 수향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가지기 앞서 일종의 동정에 가까운 의협심이라고 단정해버리는데 습관되여왔었다. 남다르다면 어릴 때부터 옆집에서 함께 자란 정때문일것이다. 정이란 엄연히 사랑과는 별개의 개념이라고 금혁은 생각했다.

며칠전 대학을 졸업하고온 수향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도 례외가 아니였다. 까닭모를 그리움, 까닭모를 즐거움, 까닭모를 서운함…

그러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바로 어제였다.

퇴근시간이 되여 기계화반정문을 나서는데 마침 큰길로 돌을 가득 실은 손달구지를 끌고 땀을 빨빨 흘리며 지나가는 수향을 보게 되였다.

얼른 달려가 앞채를 끌어주며 어디에 쓸 돌인가고 물으니 온실을 지을 기초돌이라고 했다.

《시험포에 온실은 왜 짓소?》

《관리위원장동지 과업을 받구 흙보산비료생산원리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료해했는데 적산온도를 보장하자면 우선 온실조건부터 마련해야 하거던요.》

《그래 혼자서 온실을 짓는건 아니겠지?》

《모레부터 보수분조가 도와주기로 했어요. 하루라도 빨리 하고싶어서 미리 자재준비를 해놓자는거예요.》

그러는 사이에 시험포입구의 온실자리에 닿았다.

금혁은 연약한 처녀의 힘으로 아름찬 일을 스스로 맡아하는 수향의 모습에 감동되면서 그를 힘자라는껏 도와주고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기초돌과 블로크 나르는 일을 함께 하게 되였다. 둘이서 손달구지를 끄느라니 아무리 힘을 써도 힘든줄 몰랐고 무슨 일이든지 더 하고만싶었다.

일을 끝내고난 그들은 다리쉼을 하느라고 논뚝에 나란히 앉았다.

금혁은 한대 피우고싶어 주머니를 뒤지다가 담배곽만 꺼내들고 락심한 기색을 지었다.

《라이타를 또 잊어먹고 나왔군. 왜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지.》

《그래요? 아이, 마침이군요.》

금혁은 기뻐하는 수향을 얼떠름히 마주보았다.

수향이 품속에서 꺼내주는 라이타를 보고는 더더욱 놀랐다.

《아니, 이건 어디서?》

수향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금혁동무 주려고 샀지요 뭐. 여러 색갈중에서 불길색을 골랐어요.》

《불길색을?》

별안간 금혁은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가 던져지는것만 같았다. 그것이 온몸을 사르며 처녀의 고백을 대신해주는듯싶었다.

불! 불이란 무엇인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신화의 주인공 프로메테우스가 생각났다. 불의 발견과 리용으로 인간은 어둠과 추위로부터 자기를 보호할수 있었고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하고 문명에로의 진보를 한걸음크게 내짚을수 있었다. 오늘날에 와서 불은 인간생활과 뗄수없이 밀착되였으며 그것 없이는 인간의 생존 그자체를 유지할수 없을 정도로 필수적인것으로 되였다.

금혁에게 있어서 수향은 열과 빛을 주는 불과 같은 존재였다.

금혁은 스스로도 놀랄만큼 확신적인 어조로 부르짖었다.

《고마워, 수향이! 내 일생을 뜨겁게 불처럼 살겠소!》

그는 자기가 어떻게 처녀에게 다가갔는지 알지 못했다.

수향은 《어마나.》 하고 가볍게 놀라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으나 그의 눈빛은 행복감에 불타고있었다.

《믿어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되여주세요.》

열렬한 속삭임소리가 꿈속에서처럼 들려왔다.…

금혁은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온몸이 그대로 불에 타는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그 모든것이 꿈인가싶게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자기가 너무도 때이르게 처녀의 사랑에 휘말려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두려워지기도 했다. 허나 이미 지펴진 불은 천성적으로 어줍은 금혁의 성격에 무관하게 맹렬히 타번지고있었다. 어줍은 대신 사고가 정돈되여있는 금혁은 파격적으로 급상승하는 둘사이의 관계에서 내심 두려움에 가까운 환희를 체험하고있었다.

둘사이의 관계에서 고삐는 수향이가 쥐고있었다. 고삐가 끄는대로 따라가는것도 행복이라는것을 금혁은 왜서인지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약속된 장소에 이르니 수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오늘 휴식일을 리용하여 온실기초와 벽체쌓기를 둘이서 해치우기로 했었다. 그러면 래일중으로 보수분조가 웃설미공사를 끝낼수 있게 된다.

수향이가 왜 아직 안 나왔을가? 먼저 나왔으리라 생각하며 수향의 집을 지나쳐왔는데…

담배 한대를 태우며 기다렸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금혁은 애써 불안을 지워버리며 그동안 기초구뎅이를 파놓으려 웃동을 벗어제꼈다.


한편 아침 일찍 집을 떠나오던 수향은 뜻밖의 일로 중간에서 지체하게 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휴식의 하루를 뜻깊게 보내게 된 기쁨을 안고 가뿐가뿐 걸음을 옮기던 수향은 등뒤에서 울려오는 다급한 소리에 깜짝 놀라 멈춰섰다.

《아야 저거, 저놈 잡아라!― 잡아!―》

소재지를 금방 벗어나 3반동네를 지날 때였는데 대문을 박차고 나온 정춘화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수향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얼결에 내려다보니 그의 발치에로 하얀 돼지새끼 한마리가 모두발로 달려오고있었다.

《엄마! 요놈 돼지새끼!》

수향은 보꾸레미를 든 손을 쳐들고 황급히 한쪽손을 돼지의 귀쪽으로 뻗쳤다.

온몸에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새끼돼지는 주저없이 돌진하며 수향이의 두다리사이를 빠져나갔다.

(요놈이 녀자라고 얕보는게 아니야?)

수향은 약이 올라 보자기를 놓고 그놈을 쫓아 죽어라고 달려갔다. 짤막한 다리로 오똘거리며 달아나던 새끼돼지는 획 돌아서더니 딱 멈추어섰다. 어디 한번 잡아보라는듯이.

수향은 두손을 뻗치며 와락 그놈의 뒤다리를 덮치였다.

그 서슬에 수향은 앞으로 콱 어푸러지면서 그만 돌부리에 이마를 쪼았다.

《아!》

그 틈에 돼지새끼는 또다시 용을 써서 다리를 빼내고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큰길이 아니라 길옆의 언덕받이로 올려붙었다.

《아이고, 저걸 어째? 저걸, 아이구야.》

작대기를 들고 달려온 춘화가 아부재기를 치더니 천방지축 그쪽으로 달려갔다. 돼지새끼가 얼마나 힘이 세고 날래빠졌는지 녀자들의 힘으로는 붙잡을 가망이 없었다.

락담실색한 춘화는 《아유, 고놈의 돼지새끼.》 하고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바로 그때 언덕길을 넘어오던 남정 하나가 비호같이 언덕우로 몸을 날리였다.

언젠가 수로작업장에서 사람들의 악의없는 롱담에 올랐던 영순네작업반 창세였다.

뚝하면서도 날파람있게 생긴 창세의 억센 손아귀에 새끼돼지는 면바로 허리동아리를 붙들리우고말았다.

그래도 빠져보겠다고 필사적으로 사지를 버들쩍거리며 꽥꽥 멱따는 소리를 지르는 돼지새끼를 안고 창세는 언덕을 내려왔다.

땀발이 돋아서 숨을 헐떡이고 선 두 녀자를 번갈아보던 그는 작대기를 쥔 춘화앞으로 다가왔다.

《쌍둥이네 집거요?》

춘화는 당황해하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안됐어요. 팔러 나가자던게 그만…》

춘화가 돼지를 넘겨받자고 두팔을 내밀자 창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찮아도 새끼돼지 사러 축산반에 가던 길인데 이걸 내게 주구려.》

수향은 녀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부추겼다.

《차라리 잘됐어요. 성질 못된 돼지 콱 팔아버리라요.》

춘화는 머리를 저었다.

《성질 못된게 돼서 더구나 안돼. 사겠으면 집에 가서 순한 놈으루 골라 사세요.》

수향은 춘화의 고운 마음씨에 새삼스레 탄복하며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난 사나운 놈이 더 좋소. 생활력이 강하니까. 이왕 내 손에 붙잡힌 놈이니 내놓기 싫구만. 자, 옛소.》

강파름한 얼굴에 구레나룻이 덮여 무뚝뚝해보이는 창세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녀인은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저…》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된것으로 치기요.》

창세는 두말 못하게 잘라버리고는 홱 돌아서 씨엉씨엉 멀어져갔다.

춘화는 은근한 시선으로 그쪽을 바라보다가 《호―》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저사람 꽤나 괜찮아보이는데, 아는 사이나요?》

수향이 호기심이 동해서 묻는 말이였다.

《응, 그저 좀…》

춘화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자기 집 대문앞에 이르러 수향의 보따리를 집어들려주던 그는 비로소 급한 기색이 되였다.

《아니, 얼굴에 상처가, 들어가 약을 바르고 가라구.》

《아이, 일없어요.》

《일없긴 뭐가 일없어? 그러다 성하면 고운 얼굴에 흠이 남게 돼.》

녀인은 억지다짐으로 끌고들어가 경대빼람을 뒤지더니 손가락만 한 연고를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상처를 입으로 후후 불며 약을 발라주면서 혀를 찼다.

《고운 처녀 얼굴을 이렇게 만들다니? 못된 놈의 돼지새끼.》

수향은 아픔도 잊고 재미있게 웃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녀인의 집을 나온 수향은 금혁이 기다리고있을 시험포에로 황황히 반달음을 놓았다.

웃동을 벗어제낀 금혁이 벌써 기초구뎅이를 파놓고 돌을 날라오고있었다.

《금혁동무! 오래 기다렸어요?》

바위같이 큰 돌을 쾅 하고 던져넣은 금혁이 땀흐르는 얼굴을 가로 저으며 벌씬 웃었다. 녀자처럼 얄팍하고 선이 또렷한 입술사이로 큼직큼직한 대문이와 송곳이가 활짝 드러난다.

수향은 그 웃는 인상을 보는 순간이 제일 즐거웠다.

금혁이 문득 웃음을 거두고 놀라며 다가왔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소? 웬 상처요?》

수향은 일부러 몹시 분한 기색을 지었다.

《흥, 별놈때문에 그만… 정말 사납더군요.》

《뭐? 그게 누구요?》

금시 달려가기라도 할듯이 다우쳐묻는 금혁을 보자 수향은 그만에야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호호… 호호호…》

금혁은 어리둥절해서 눈을 껌벅거렸다.

《아니, 그러구두 웃어?》

《아이, 웃음이 나오는걸 어떡해요? 금혁동무가 그 쬐꼬만 돼지새끼와 결투를 하는 모양을 상상해보니, 아유 우스워, 호호…》

《뭐 돼지새끼?》

수향의 이야기를 들은 금혁은 그만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호호…》

수향이도 금혁을 놀래운것이 재미나서 상처의 아픔도 잊고 허리를 접으며 유쾌하게 웃어댔다.

한참만에 그들은 일을 시작했다.

《이거 내 혼자 하다나니 제대로 했는지…》

금혁이가 이미 파놓은 기초구뎅이와 수향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휴계실은 왜 이렇게 크게 잡았어요? 그러니 온실칸이 작아졌지요?》

수향이 고운 눈을 할기작거린다.

《그야 녀성이 사용하는 휴계실이니까…》

《한살림 펴놓을 작정인가요?》

한살림이란 말에 금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수향은 곁따라 얼굴이 빨개졌으나 이미 떠올린 말이라 주어담을수도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속에 한동안 일손만 묵묵히 놀렸다.

그래도 사내라 금혁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황소가 보잡이없이 밭을 갈았으니 제대로 이랑고랑을 잡을수 없지.》

《어마나, 그럼 금혁동문 황소구 난 보잡이라는거예요?》

《고삐 끄는대루 따라가는 황소지.》

《황소가 녀자말을 잘 안 듣는대요?》

수향의 입가에 미소가 잔줄거렸다.

《그럼 회초리로 때리지 뭐.》

《어마나, 호호.》

《허허.》

둘은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밖에 있던 모래와 진흙, 소석회를 모두 날라들였다.

수향은 물을 붓고 금혁은 진흙과 소석회, 모래를 혼합하였다.

열성스레 몰탈을 이기고 기초다짐을 하느라 그들은 준석이 이미 와있는줄도 모르고있었다.

젊은이들의 작업모습을 지켜보는 준석의 얼굴에는 대견함만이 아닌 기쁨과 감동의 빛이 그득 어리였다.

사실 그는 휴식일을 리용하여 농장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어깨를 지지누르는 중압감에 가슴이 답답하던 참이였다. 해야 할 일은 아름차건만 물질적토대는 빈약했던것이다. 농산반, 기계화반, 축산반… 어딜 가보나 자재와 원료의 부족을 호소한다. 은연중 갈마드는 막연한 생각에 한숨이 새여나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금혁이네를 만나게 된것이다. 힘겨운 전투끝에 차례진 하루의 휴식일마저 아낌없이 바쳐가며 거기서 기쁨을 찾을줄 아는 젊은이들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때묻지 않은 그 순결함과 생신함, 불붙듯 열정적인 그 헌신성과 주저나 답보를 모르는 기백에 준석은 가슴이 뭉클하도록 감동이 되였다. 힘이 나고 신심이 솟구친다. 새 세대 청년들의 약동하는 모습은 그대로 농장의 밝은 앞날을 확신케 했다.

준석은 사랑스러운 젊은이들과 함께 흠뻑 땀을 흘리고싶은 충동을 느끼며 큰소리로 말을 건늬였다.

《아하, 이거 누가 오늘 이런 작업을 조직했나? 젊은 동무들 휴식도 못하게, 응?》

그제야 깜짝 놀란 수향과 금혁이 땀 흐르는 얼굴을 쳐들었다.

《어마, 관리위원장동지는 휴식날 왜 나오셨습니까? 우린 지금 의의있게 휴식을 즐기고있는중인데요?》

수향이 땀을 씻으며 묘하게 역습을 들이댔다.

《허허… 이런것도 휴식이라? 땀으로 미역을 감으면서 말이지?》

준석은 담배부터 꺼내 금혁에게 내밀었다.

《자, 한대 피우라구. 땀이나 좀 들이구 하자구.》

그가 먼저 돌무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혁이 담배 한대를 뽑아 두손으로 받쳐 내밀었으나 준석은 손사래를 쳤다.

《난 피우지 않아.》

《예? 그럼 담배는 왜 넣고 다니십니까?》

《사람들을 만나 담배를 권하는 맛도 괜찮으니까. 어서 피우라는데.》

금혁이 담배불을 붙이는걸 보고서야 준석은 수향에게 말을 건늬였다.

《수향이가 정말 엉큼하거던. 언제 보잡이가 돼서 황소까지 끌어냈어?》

간식보따리를 펴놓던 수향은 귀뿌리까지 새빨개지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런게 아닙니다, 관리위원장동지. 사실 우린 대용비료와 대용연료를 한날한시에 과업받은 경쟁자들이지만 서로 다투지 말구 협조할것을 약속… 아니, 결정했거던요. 왜냐면 두가지가 다 우리 고향을 빛내이기 위한 중요한 일이니까요.》

《어마어마하구만. 하여간 좋소. 잡도리가 마음에 드오. 사실 청춘의 위훈은 고향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지.》

준석은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앞벌을 유정히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계속했다.

《고향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게 무엇이겠니?

사랑이란 곧 헌신이다. 이 대지우에 말로가 아니라 땀으로써 자기의 사랑을 새길줄 알아야 하고 열매로써 자기의 사랑을 표현할줄 알아야 한다. 땅은 그가 누구든 자기를 사랑한만큼 열매를 주는 법이다. 에누리나 흥정은 통하지 않거던.

난 너희들이 애국의 보탑을 튼튼히 틀어쥐고 오늘의 시련과 난관을 대담하게 갈아엎으리라고 믿는다.》

《알겠어요.》

주의깊이 새겨듣고있던 수향과 금혁이 동시에 대답했다.

수향이 내놓은 강냉이튀기를 맛있게 씹던 준석은 문뜩 생각난듯 물었다.

《참 수향이, 흙보산비료의 조성지표가 뭐더라?》

《아이, 그거야 뭐…》

수향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쭉 내리엮었다.

《잘 알고있구나. 헌데 그게 말이 쉽지 헐치 않아. 필요한 온도를 보장하자면 온실만으로는 안돼. 온실안에 구들을 놓구 불까지 때야 하거던. 얼마나 힘들겠는지 생각해봤겠지?》

《농사만 잘될수 있다면야 힘든게 무슨 문제입니까? 기껏해서 땀과 열매를 바꾸는건데 걱정마십시오.》

《좋아, 이번엔 금혁이 시험을 쳐볼가?》

《예, 아야 어려운 문제를 좀 내십시오.》

금혁이 시뭇이 웃기만 하는걸 보고 수향이 속이 간질거려 이렇게 추기였다.

《응, 그러자구. 아주 대답하기 힘든 문제야.

우리 농장에 농기계가 총 몇가지이며 그 이름들은 무엇인가?》

정작 문제가 제시되자 수향은 은근히 긴장해졌다. 금혁이 대답을 못할것만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수향을 놀라게 했다.

농기계종수만 해도 수십종, 련결농기계종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는것이다.

《어마나― 그렇게 많아요?》

수향은 비명을 지르다싶이 했다. 하마트면 《엉터리박사》라는 놀림이 나갈번 했다.

금혁은 들어보라는듯 침착하게 내리엮었다.

《그 이름을 보면 뜨락또르, 자동차, 모내는기계, 벼수확기, 제초기, 모뜨는기계, 작조기, 비닐박막세척기, 거름상차기, 모판만드는기계, 논뚝짓는기계, 지주목구뎅이파는기계, 강냉이오사리벗기는기계, 단지찍개, 비료살포기, 자동운토기, 쇠써레, 논귀잡이가는기계…》

《엄마― 별의별 기계들이 다 있네! 그게 사실입니까?》

수향이 눈이 휘둥그래서 감탄사를 련발하자 준석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옳다, 금혁이가 그새 자기 사업을 많이 연구했구나. 그래, 그 많은 기계들이 다 어떻게 되여 생긴것인지 금혁인 알고있겠지?》

《예, 위대한 수령님께서 협동조합을 남먼저 조직한 우리 마을에 뜨락또르를 보내주신 그때부터 우리 농장의 기계화가 시작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1960년도에는 농장에 기계화반이 조직되고 볼반, 선반, 용접기, 구라인다, 동력함마 등을 자체로 만들어 농기구수리와 생산에 적극 리용하게 되였다고 합니다.》

《잘 알고있구만.

사실 우리 선봉땅의 력사를 놓고보면 기계화의 발전력사라고도 할수 있소.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끝난지 몇해 안된 1957년도 현지지도때 벌써 모든 농사일을 기계로 할수 있게 토지정리를 할데 대해 가르쳐주셨구 이듬해 또다시 찾아오셨을 때는 자급비료를 싣고 포전으로 달리는 조합의 자동차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며 언제 우리 나라 농촌에서 저렇게 자동차와 뜨락또르가 농민들의 힘든 일을 도와주는것을 본 일이 있는가? 이것은 오직 로동당시대의 사회주의농촌에서만 볼수 있는 일이다, 화물자동차와 뜨락또르를 더 많이 보내주도록 하겠으니 앞으로 농민들을 힘든 일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이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여야 하겠다,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지상락원이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소.》

가슴을 세차게 들먹이며 한마디한마디를 새겨듣는 금혁의 눈앞에는 무심히 보았던 기계화반의 농기계들이 새삼스런 의미를 띠고 안겨왔다.

《이날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오셨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 목화밭에서 손으로 영양단지를 옮겨심고있는 농민들을 보시고 얼마나 힘들겠는가구 념려하시면서 목화영양단지찍는기계와 옮겨심는기계를 창안하게 해야겠다구 간곡히 말씀하시였소.

어느해 가을 례년에 없는 대풍을 맞이한 우리 농장을 또다시 찾아주신 수령님께서는 벼수확기로 가을걷이를 하고있는 농장원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며 기계가동정형에 대해 물으시였어. 그때 관리위원장이 모뜨는기계와 모내는기계를 잘 리용해서 한명의 지원로력도 받지 않고 모내기를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한데 대해 보고드렸지. 수령님께서는 모뜨기와 모내기를 100프로 기계화해서 로력을 절약한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하시면서 선봉협동농장에서 벼수확기를 좀 더 받으면 가을걷이도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 자체로 얼마든지 할수 있을것입니다, 선봉협동농장에서 멀지 않아 농사일을 종합적으로 기계화할수 있을것 같다고 못내 기뻐하시였소.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뜻대로 우리 농장을 종합적기계화의 본보기농장으로 내세워주시려고 보내주신 화물자동차와 뜨락또르, 모내는기계, 벼수확기만도 수십대나 되지.》

수향과 금혁은 감격을 금치 못해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긍지에 넘쳐 이야기하던 준석은 불현듯 침중한 어조를 짓고 무겁게 뇌이였다.

《그런데 그 귀중한 기계들이… 지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있으니…》

수향과 금혁은 눈물이 글썽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준석은 그들의 어깨에 량손을 얹으며 힘주어 말했다.

《이제는 우리 세대가 아버지들의 공적을 빛내여야 할 때가 됐소. 내 요전번에 처음 만나서도 말했지만 대용비료, 대용연료도입은 우리 농장실정에서 농사를 더잘 짓기 위한 선차적요구라고 할수 있소. 내 말뜻을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이젠 땀을 좀 뽑아볼가?》

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벗는걸 보고 금혁은 급히 만류했다.

《그만두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왜? 내가 아무렴 그렇게 재간이 없을가봐? 이래뵈두 군대때부터 소문난 축조공이였어. 자, 금혁인 블로크, 수향인 몰탈!》

이러면서 준석은 벌써 미장칼을 쥐고 손바닥에 툭툭 날을 쳐보는것이였다.

어쩌는수없이 처녀총각은 관리위원장의 일손을 거들어주게 되였다.

크고작은 벽돌장들을 사개가 맞물리게 척척 들여맞추는 준석의 솜씨는 정말 놀라왔다.

어느사이 곱슬머리가 드리운 얼굴이며 런닝그밖으로 드러난 상체가 기름을 바른듯 땀으로 번들거렸다.

축조가 거의 끝나가고있을 때 관리위원회 직일근무를 서던 민영태가 불쑥 나타났다.

《아, 관리위원장동무가 여기 있는걸 2반으루, 집으루 찾아다녔구만. 에― 덥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평양서 전화가 왔소.》

《평양이요?…》

준석은 피뜩 긴장해지며 묻는 눈길을 보냈다.

《자, 빨리 가 전화를 받으라구요.》

《평양 누구랍니까?》

《아 누군 누구겠소? 안주인이지.》

준석은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또 물었다.

《저… 무슨 일이 있답니까?》

《그런 말은 없는데 아마 오늘이 휴식날이니까 시간이 좀 있겠지 하구 전화를 거는 모양이요.

아직까지 소식 한번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더구만.》

준석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어렸다.

《알겠습니다, 부위원장동지. 수고스러운대로 저대신 전화를 좀 받아주십시오. 지금 바쁜 일이 있어 그러니 오후에 꼭 올리전화를 하겠다고요.》

민영태는 펄쩍 뛰며 나무랐다.

《원, 그게 무슨 소리요? 주인 목소리라도 한번 듣구싶어하는 내인의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주다니? 이 일이야 우리 애들이 어련히 하겠는데 뭘 그러우?》

《그런게 아닙니다. 꼭 할말이 있다면 오후에 제가 전화를 하겠다고 말해주십시오.》

그러나 이날 오후에도 준석은 안해와의 약속을 지킬수 없었다.

2작업반 씨뿌리기방식상학준비때문에 저녁늦게까지 포전에 나가있다나니 감감 전화생각을 잊어버렸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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