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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3


협의회가 끝난 뒤 민영태는 담당작업반으로 나가기 전에 기계화반부터 들리였다.

김준석관리위원장이 끝내 휘발유구입을 위한 여러가지 가능성을 외면하고 대용연료도입만을 강경히 주장하는 조건에서 자기 아들이 하고있는 연구사업에 무관심할수는 없었던것이다.

수리분조작업장에 들어서니 노란색과 검은색이 엇섞인 진한 연기가 룡트림하듯 타래쳐올랐다. 매캐한 가스내가 코를 찔렀다.

작업복과 얼굴에 검댕이칠을 한 금혁이 계기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풍구질을 하고있었다.

민영태는 담배대를 입에 문채 아들의 작업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금혁이 가스로뚜껑을 닫고 모내는기계동체에 매달아놓은 커다란 비닐주머니에 가스관을 련결시켰다. 주머니가 팽팽하게 차오르자 발동을 걸었다. 통탕통탕 동음소리가 기세차게 울렸다.

안경을 닦아끼고 긴장하게 기관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금혁은 벼겨를 퍼서 불통안에 쏟아넣었다.

땀을 씻으며 돌아서던 그는 아버지를 보자 주춤 놀랐다.

영태는 얼룩덜룩하고 재티가 앉은 아들의 얼굴에 땀이 흐르는것을 보자 이마살을 찡그렸다.

《그래, 어떠냐? 이번엔 꽤 됨직하냐?》

하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케가 굴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금혁은 자신없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메탄가스나 벼겨가스나 그 불합리성에선 같구같으니까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스주머니는 30분도 안됐는데 풀썩 꺼지고 발동소리는 점점 작아지다가 맥없이 멎어버리고말았다.

금혁은 락심천만하여 머리를 싸쥐고 주저앉았다.

민영태도 한심한 생각이 들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아들의 시르죽은상을 보기가 딱해 일부러 호방스럽게 시까슬렀다.

《야, 사내녀석이 무슨 한숨소리가 그러냐? 안될것 같으면 결단성있게 끝장내구 또 다른 방도를 찾아야지. 지금 관리위원장이 여기다 큰 기대를 걸구있는데 웃음거리가 되면 야단 아니냐. 이젠 관리위원장뿐아니라 온 리가 여기만 바라보고있단 말이야.》

그 소리에 정신이 든듯 금혁은 움쭉 일어났다.

그때 마침 부기사장과 수리분조성원들이 들어왔다.

《분조장이 일찍부터 시작을 했구만. 이젠 아버지까지 열성이니 성공은 문제없겠는걸?》

부기사장이 떠드는 바람에 영태는 속이 불끈해서 내쏘았다.

《이건 누굴 놀리는겐가? 안될 일이라는걸 뻔히 알면서두 성공이요 뭐요 희떱게, 쯧쯧…》

《아, 됐네, 됐어. 이제 좀 있으면 모내기철인데 나도 너무 답답해서 하는 소릴세.

자 금혁이, 여기 사람들을 데리구 다시한번 해보자구. 되든지 안되든지 오늘로써 벼겨가스는 결판을 봐야겠소.》

부기사장이 솔선 팔을 걷고 나섰다. 다른 사람들도 한가지씩 일거리를 맡아 시작했다.

(결판을 본다.… 그다음은 무슨 방도가 있는가? 농촌에서 메탄가스, 벼겨가스가 안되면 끝이지 대용연료를 또 뭘루 할게 있단 말인가?)

담당작업반으로 향하는 민영태의 생각은 착잡했다. 검댕이가 발리고 땀이 줄기쳐흐르던 아들의 얼굴이 줄곧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부위원장이라는게 모내기용기름도 해결 못해서 아들녀석을 저 고생시키다니? 고생도 승산있는 고생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러다 정말 온 리에 소문만 내놓고 망신이나 당하는게 아니야?

후유― 이거 도에 배치된 녀석을 괜히 끌어다놓고 긁어부스럼 만들었구나.)

영태는 담배연기와 함께 연방 한숨을 내불었다. 사실 몇달동안 관리위원장사업을 대리하면서 장차 자기가 정식 관리위원장으로 될것으로 예견하고 아들을 농장기계화사업에 요긴하게 써먹자던노릇이 오히려 자기 가정에 화를 가져온셈이 된것 같았다.

차라리 그때 평양에 올라갔을 때 준석을 찾아가지나 말았을걸. 믿는도끼 발등 찍는다더니 이렇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던가? 생각할수록 후회가 막심했다. 혹떼러 갔다가 오히려 덧붙이고 왔다는 분한 마음이 불꼬챙이처럼 가슴을 쑤시고들었다. 그것은 자연히 준석에 대한 불만과 원망의 감정으로 덧쌓여져갔다.

어느덧 2반포전에 이르렀다.

모생육상태를 관찰하던 영순이 기다렸던듯 말을 걸었다.

《부위원장동지, 금혁이 엄마는 오늘도 못 나오는가요? 왜 자꾸 앓을가요? 좀 잘 돌봐주세요.》

(차, 이거 이사람은 오늘도 또 아픈가?)

영태는 대뜸 골살을 찌프리고 입귀에 물었던 담배를 뽑아들었다.

《아 거 체네때 모내기경기 하다가 다쳤다는 허리가 도져서 그러질 않소? 내 온밤 그 사람 병간호하느라구 잠을 다 못 잤다니까.》

《에그―야, 몸은 남보다 뚱뚱해가지구두 쩍하면 병결이니 참,》

《글쎄말이요. 나도 정말 안타깝소. 그런줄 알았으면 당초에 싹 파혼해버리는건데.》

민영태는 짐짓 얼굴에 심각한 빛을 띄우느라 애썼다.

그 말에 영순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속에 없는 소리 그만해요. 아주머니를 끔직이 귀해하는걸 모르는줄 알구?

어쨌든 부위원장동지 책임이 큽니다. 고양이손도 빌려야 할 농번기에 한사람이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크나요?》

《알겠소. 내 단단히 대책을 세우지.》

영태는 얼른 대답을 하고나서 눈길을 서둘러 모판에 돌리였다.

《아하, 이거 하루사이에 벼모가 또 자란게 알리누만. 정말 멋있소. 이렇게 푸르싱싱하구 튼튼한 벼모를 보니 가을날의 벼바다가 눈앞에 보이는것 같소, 정말이요!》

《어마나, 부위원장동진 언제 그런 공상가가 되였어요? 호호…》

《아, 공상이 아니라는데. 옛날부터 논자랑말구 모자랑하랬지 않나? 역시 우리 2반이 모판관리부터 1등이란 말이야, 1등! 정말이요.》

《아유, 누가 뭐 아니라는것처럼 자꾸 〈정말〉,〈정말〉 하시네.》

《호호…》

모판관리공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던 영순이 문뜩 정색해지며 말했다.

《아무리 충실한 벼모라두 제때에 논에 옮겨야 벼바다가 되는게 아니겠어요.》

《암, 그야 두말할것두 없지.》

《부위원장동진 우리 작업반이 모내기에서도 1등을 할수 있게 연유만 보장해주세요.》

《연유?》

벼모칭찬이 갑자기 연유책임문제로 돌아오자 영태는 약간 당황해졌다.

《아니, 반장은 이자 방금 회의에 참가하구서두 연유타령인가? 그만큼 대용연료, 대용연료하는데 쯧쯧…》

그쯤한 핀잔에 주눅이 들 영순이 아니였다.

《아니 뭐 대용연료는 연유가 아닌가요? 아무거든 기계가 먹을 식량만 해결해달란 말이예요.》

《허참, 그러니까 대용연료도 이 부위원장책임이라는건가?》

《물론이죠 뭐. 우린 그저 부위원장이 맡은 작업반이니 마음을 놓습니다.》

《하긴 까짓거 떡하는 놈 떡먹게마련이라구 내 아무렴 담당작업반에 기름이야 못 댈라구? 걱정마오! 정말이요!》

민영태는 너그럽게 웃으며 장담을 했다.

이날 점심을 영순의 집에서 대접받고난 그는 오후일을 끝내기 바쁘게 기계화반으로 향했다. 아침에 시작했던 벼겨가스시험이 어떤 결말을 지었는지 궁금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작업장이 텅 비여있었다.

남아있는 작업반원에게 물으니 벼겨가스는 실패했고 일하던 사람들은 학교운동장으로 체육경기를 하러 갔다는것이였다.

그제야 아침에 협의회에서 오늘 저녁 선수선발을 위한 작업반대항경기를 결정한 생각이 났다.

《흥, 잘들은 한다. 대용연료는 실패했다면서 뭣이 좋아 체육경기엔 몰려가? 철딱서니없기란.》

누구에게라없이 욕하는 소리였다. 보나마나 부기사장의 손탁에 등을 떠밀리웠을것이다. 대용연료때문에 물망에 오른 금혁이 경기장에서 제 망신인줄 모르고 덤비는것 같아 도저히 마음놓이지 않았다. 하긴 실패끝에 쓰러져 고민하는것보다는 경기판에 휩쓸려 공을 따라 뛰여다니는게 훨씬 낫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쉼을 하는것도 괜찮아.

영태는 담배 한대를 태우고 부리나케 학교운동장으로 갔다.

저녁노을이 비낀 운동장 한가운데서는 마침 기계화작업반과 보수작업반간의 축구경기가 한창이였다.

민영태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안경을 써서 유표하게 뜨이는 금혁이가 제법 앞장에서 뽈을 몰고 달리고있는것이였다.

(아니, 저녀석이 언제 축구를 다 배웠나? 공부밖에 모르는 샌님인줄알았더니…)

그는 희한해서 침을 삼키며 구경했다.

상대편방어수들을 자기에게 끌어당기고 재치있게 빼몰기를 하면서 자기편공격수에게 슬쩍 련락해주는 아들의 모습이 못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때 배구장에서 준석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부위원장동무! 여기요, 여기! 빨리 오시오!》

(엉?)

돌아보니 배구그물을 사이에 두고 리당일군들과 관리일군들이 런닝그바람으로들 마주 서있었다. 박정운당비서도 그속에 끼여 팔다리운동을 하고있었다. 그걸 보니 부쩍 승벽심이 살아올랐다.

《예, 내 가우다!》

민영태는 피우던 담배를 집어던지고 웃저고리를 벗으면서 달려갔다. 다른건 몰라도 배구만은 자신이 있는 그였다.

60이 가까와오는 농근맹위원장이 주심석에 올라앉아 경기시작을 알리는 호각을 홱 불었다.

공은 그물을 사이에 두고 아짜아짜하게 날아가고 날아왔다.

두편이 다 공격이 예리하고 방어에서 빈구석이 없었다. 드센 타격과 완강한 방어, 또다시 날카로운 공격과 아슬아슬한 방어…

시간이 흐를수록 경기는 더욱더 긴장하고 치렬하게 벌어졌다.

상대편 뒤쪽에서 길게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온 공을 영태가 다급히 받아쳤다.

공격도 련락도 아닌 의도가 분명치 않은 공이 그물웃선을 스쳐 넘어가고있었다. 상대편이 반공격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위기일발의 순간, 어느새 튀여오른 준석이 공이 그물을 넘어서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하게 타격했다.

눈깜빡할 사이에 대각으로 내려꽂히는 공을 상대편은 미처 받을념도 못했다. 예상밖의 공격이 가져다준 통쾌한 득점! 어슷비슷하던 경기국면이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바뀌였다.

몇분후에는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가볍게 받아 높이 띄운 공을 강타할듯 하다가 빈자리에 살짝한것이 또다시 성공하였다.

민영태는 자기가 선수라는것도 망각하고 준석의 그 민첩한 동작과 드센 타격솜씨를 바라보고있었다. 체격자체가 후리후리한데다가 잘 발달된 근육들에 탄력이 넘치고 정황판단과 처리가 놀랄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뒤구석자리를 차지했다가도 어느새 앞으로 몸을 날려 위험을 막아내군 하였고 금시 땅에 닿게 되였던 공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그의 손에 맞아 공중으로 튀여오르군 하였다.

상대편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제일 년로한 박정운당비서의 투신력은 놀랄만 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다방면적이였던 그는 지금도 기운이 펄펄하였다. 마치도 결사전에 나선 전투원마냥 공을 향해 아낌없이 몸을 내던졌다.

경기는 관리일군팀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까지는 리당일군들과 관리일군들의 배구실력이 엇비슷하여 정확한 우렬이 갈라져있지 않았는데 오늘 새 관리위원장의 출현과 맹활약으로 하여 력량대비가 뚜렷해진것이였다.

리당일군들이 아쉬워하는데 박정운당비서만은 흡족해서 말했다.

《오늘 비록 우리 팀은 졌지만 군경기에서 선봉이 우승할수 있는 전망은 확고하오.》

《신심이 있습니다.》

준석이 웃옷단추를 채우며 의기양양해서 웨쳤다.

그 소리에 민영태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토록 승벽심이 강하고 일욕심 많은 사람이 어쩌면 영농자재구입에서는 속수무책일가? 성공이 묘연한 대용연료에만 잔뜩 기대를 걸고있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안해가 콩망질을 하다가 반겨맞았다.

《지금 오세요?》

영태는 나이보다 10년은 젊어보이는 안해의 핑핑한 얼굴을 마주보며 퉁명스레 물었다.

《아프다더니?》

《아유, 당신이 이렇게 념려해주는데 낫지 않구요.》

미옥은 애교있게 웃으며 남편의 옷을 받아 걸고 부지런히 밥상을 차렸다.

《나았으면 래일부터 일을 나가라구. 금혁이 일도 안돼서 남보기 부끄러운데 당신까지 말밥에 올라서 되겠소?》

《에그― 그러게 금혁이는 왜 이 농촌구석에 끌어다놨는지? 정말 속상해서 지레 늙겠어.》

금시 웃던 미옥은 별안간 샐쭉해서 돌아앉는다.

영태는 무안감을 느끼며 달래듯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된걸 이제 와서 어찌겠소? 그래, 금혁이는 아직까지 안들어왔나?》

《얼핏 들어왔댔는데 입맛이 없는지 한술 뜨는지마는지하구 나가더군요. 청년동맹회의를 한다던가? 그래 금혁이 좋아하는 비지를 해놨다주려구요, 호―》

안해의 어조에서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애처로움이 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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