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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회


6


모임이 끝난 후였다.

수향은 흩어져가는 사람들속에서 금혁을 찾느라 이리저리 목을 뺐다. 금혁은 어느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짐작되는것이 있어 부리나케 수리분조로 달음쳐가니 아닐세라 금혁이 모내는기계에 붙어앉아 흰 종이에 무엇인가 그려넣고있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 그래요?》

수향이 숨을 할딱이며 다그쳐묻자 금혁은 열기띤 눈빛으로 대꾸했다.

《이건 아주 단순한 모방이긴 하지만 말이야. 모내는기계에도 자동차처럼 가스발생로를 직접 설치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거야.》

《자동차처럼요?》

수향은 놀라서 되뇌였다. 비로소 자동차의 목탄가스로앞에 마주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금혁의 거동이 리해되였다.

수향은 생각지 않았던 문제여서 얼른 납득이 되지 않았다.

금혁은 메탄가스와 벼겨가스를 생산하던 로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보라구. 지금까지는 여기서 생산된 가스를 비닐주머니에 공급받아가지구 나가니까 30분만에 발동이 멎군 했지? 하지만 자동차에서처럼 모내는기계에 가스발생로를 직접 설치하게 되면 연료량만큼 가동시간을 지속시킬수 있거던.》

《그건 그렇다쳐도… 자동차와 모내는기계가 뭐 같아요? 그 육중한 가스로를 어떻게 모내는기계에 설치한다구?》

수향은 여전히 기연가미연가하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내 그래서 이자 그 계산을 해보았는데 문제될게 없소. 자동차의 목탄가스로를 4분의 1로 축소하면 모내는기계에 능히 설치할수 있단말이요.》

《야― 그러니까 가능하단 말이지요?》

수향은 금혁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기쁨을 금할수 없어 손벽을 딱 마주쳤다.

《문제는 연료를 무엇으로 하는가 하는건데 자동차에서처럼 강냉이속만 가지고는 어방이 없는거구 벼겨나 메탄가스는 싣고다닐게 못되지…

연료원천, 사실은 이게 근본문제란 말이야.》

말하자면 부뚜막에 가마는 걸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땔나무가 없는것이다.

잠시 머리를 갸웃하고 눈을 깜박이던 수향이가 별안간 무릎을 탁 쳤다.

《참, 우리 고장에 흔한 저 봉황산의 잡관목을 리용하면 어때요?》

《뭐? 잡관목?》

덩둘해서 굳어졌던 금혁의 입에서 마침내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 그렇지! 잡관목가스, 될것 같소. 수향이, 빨리 관리위원장동지한테 가기요.》

그들은 한달음에 관리위원회에 이르렀다.

위원장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니 준석은 책상우에 여러장의 종이들을 펴놓고 들여다보는중이였다.

《그러찮아도 금혁이 만나보러 나가려댔는데 마침이로구만. 어서 이리로 와 앉소.》

두사람은 돗자리를 깐 방바닥에 올라가 위원장책상 가까이로 다가앉았다.

준석이 탁상등을 켜놓았다.

어느덧 날이 어두웠던것이다.

금혁은 들고온 종이말이를 책상우에 펴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음… 잡관목으로 휘발유대용을 한단 말이지?… 모내는기계에 직접 설치하고…》

준석은 한동안이나 주의깊게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럴듯해. 생각을 잘했어.》

《정말 되긴 될것 같습니까?》

《되지 않구, 난 꼭 된다고 믿는다.》

《야― 정말 고맙습니다.》

수향은 마치도 창안자가 관리위원장이기나 한듯이 감사의 정을 어쩌지 못했다.

《허, 고맙다니? 오히려 내가 너희들에게 인살 해야겠는데. 자, 한대 피워라.》

준석은 소탈하게 웃으며 금혁이 앞으로 담배갑을 밀어놓았다.

사실 목탄차의 가스발생로를 모내는기계에 설치할수 없겠는가 하는것은 그가 이미 해오던 생각이였다. 원료문제도 언젠가 정춘화네 집에서 장작을 패줄 때 참나무등걸이 그렇게 불땀이 세다고 하던 말과 박영순이 봉황산에 참나무원천이 풍부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그 생각에 골몰하고있던중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마침 젊은 기사들의 생각과 일치하게 되니 완전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것이였다.

《그럼 위원장동지가 이 창안품에 명칭을 달아주십시오.》

수향의 엉뚱한 제기에 준석은 웃음을 머금었다.

《명칭이라? 그렇지, 새로운 기계니 이름부터 지어야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준석이 마침내 안을 내놓았다.

《내 생각엔 모내는기계에서 직접 불을 피워 가스를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직화로〉라고 명명하는게 좋을것 같구만.》

《직화로!》

수향과 금혁은 동시에 부르며 마주보았다.

준석은 설계도면우에 《직화로》란 이름을 큼직하게 써주었다.

《자, 래일부터 정식으로 직화로설계를 시작해보자!》

《알겠습니다!》

금혁은 새생명을 받아안은듯 엄숙하고도 벅찬 감격을 느끼며 대답했다.

두 젊은이는 들어설 때처럼 생기와 활력의 선풍을 일구며 돌아나갔다.

방안이 조용해지자 준석은 북받쳐오르는 흥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연하고 아슴푸레하던 희망이 불시에 또렷하고 선명하게 시야에 잡혀든것이다. 물론 아직은 두고보아야 할 일이지만 모든 면에서 십분 가능하고 합리적인 안이다. 특히 선봉리의 실정에 맞는 원천이 탐구된것이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였다. 이제 직화로가 성공하면 봉황산의 참나무를 영농자재로 리용하면서 나무를 베는족족 식수를 따라세워 끊임없이 그 원천을 확보해나가야 할것이다.

이런 구상을 하며 방안을 거니는데 문득 전화종소리가 따르릉 울렸다.

《관리위원장 전화받습니다.》

수화기를 들며 무심히 응답하던 준석은 갑자기 전류에 닿은듯 흠칫했다.

뜻밖에도 안해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던것이다.

《예성이 아버지! 저예요.…》

떨리는듯 한 그 어조가 왜 그리도 충격적으로 안겨드는지, 갑자기 목이 꽉 메이면서 할말을 찾을수 없었다.

얼마만에 듣는 목소리인가? 벌써 한달이 넘었다. 하지만 기쁨과 반가움만으로 대할수 없는것은 웬 까닭인가?

한찰나 그의 뇌리에는 내려온지 열흘만에 흙보산온실공사장에서 민영태의 전화련락을 받던 생각이 났다. 작업도중이여서 처한테서 오는 전화를 제때에 받지 못했더니 그후로는 감감 소식이 없었다. 그럴수록 자기가 올리전화를 해야겠는데 좀처럼 그럴 짬이 나지 않았다. 말그대로 분초를 쪼개며 뛰여다녀야 했던것이다. 시급하게 제기되는 일들에만 신경을 쓰재도 미처 시간이 돌아가지 못해 밤을 새우다싶이 한다.

리순이가 과연 이러한 사정을 리해할수 있겠는가?

허나 죄스러움은 한순간일뿐 기쁨의 격정이 물밀듯 차올랐다.

《여보! 그새 잘있었소?》

《전 일없어요, 당신은요?》

《나야 여전하지, 예성인 어떻게 지내오?》

《잘있어요.》

잠시 침묵끝에 준석은 미안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전화 한번 못해서… 욕했겠구만.》

《아이, 당신이 얼마나 바쁘구 힘들겠는지 전 리해해요. 그러찮아도 사업에 지장될가봐 될수록 전화를 하지 말자구 했던건데.

오늘은 꼭 알려드릴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게?》

웬일인지 안해의 뒤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요? 여보!》

긴장해서 숨가삐 다우쳐묻는데 갑자기 또랑또랑한 어린애의 목소리가 굴러나왔다.

《아부지, 그동안 잘있었나요? 나 예성이야요, 아부지!》

《아니, 예성이가? 그래, 어떻게 네가 전화를 다 하느냐? 그새 앓진 않구?》

《예! 아부지, 나 오늘 축전에서 1등했어요. 록화촬영이랑 했는데 래일 아동방송시간에 텔레비에 나간대요. 아부지 꼭 보시라구 전화해요.》

《오냐! 용타, 내 꼭 보겠다.》

준석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이 꽉 메였다.

통화가 끝나자 그는 래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후 5시 30분을 잊지 않으리라 속다짐하고 탁상일력장에 큼직하게 적어넣기까지 하였다.

그 시간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무실에 있는 텔레비죤으로라도 꼭 볼 생각이였다.

이튿날 아침 군에 회의때문에 들어갔던 준석은 금혁의 직화로제작에 필요한 부속품을 구하려고 군안의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오후 5시가 거의 되여서야 돌아설수 있었다.

이제 자동차만 잘 달리여주면 시간을 맞추어 농장에 들어설수 있었다.

차가 읍을 벗어 한참 달리는데 발동이 꺼져버렸다. 예견치 않게 여기저기를 다니다보니 휘발유가 떨어졌던것이다.

앞뒤를 살펴보아도 오가는 차 한대 볼수 없었다. 30분 좋이 기다려서야 이웃농장의 차를 세울수 있었다.

차가 관리위원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넘고 예성이의 바이올린독주도 지나갔다.

방가까이에 이르니 전화종소리가 지꿎게 그냥 울리고있었다.

준석은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시오, 제 관리위원장입니다.》

《나 예성이예요.》

《뭐?! 예성이라구?》

준석은 화뜰 놀라 뚝 굳어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사정없이 고막을 울린다.

《아부지, 이자 텔레비 봤나요?》

《엉?… 아니, 모… 못…봤구나.》

준석은 떠듬거리며 진땀이 나는 이마에 손을 댔다. 그는 이때 자기가 거짓말을 했어야 했음을 미처 몰랐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피할수 없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는것이다.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그의 성미가 결국 안해와 아들에게 본의아닌 아픔을 주었다.

그 섭섭함, 실망, 서러움과 원망이 얼마나 컸던지 아이는 왜 못 보았는가고 따져물을 생각조차 못하고 격해서 헐떡거리다가 《꼭 보겠다구하구선… 난 아부지가 보는줄 알구… 흑》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통화는 끊어져버렸다.

준석은 삐― 소리만 공명되는 수화기에 대고 《예성아, 이 못난 아버질… 용서해라.》 하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눈앞에는 서럽게 흐느껴우는 아이의 애처로운 모습과 함께 그뒤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며 서있을 안해의 원망에 찬 모습이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아―》

준석은 신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외마디소리를 토하며 맥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회와 자책에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상에 팔굽을 고이고 이마를 감싸쥔채 한동안 잠든듯이 굳어져있던 그는 밤늦게야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가마목에 밥그릇을 올려놓고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가 후줄근해진 아들을 놀랍게 맞이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니?》

준석은 숨기고싶지 않아 하소연이라도 하듯 말했다.

《어머니, 예성이가 오늘일을 커서는 리해해줄가요?》

《무슨 일이 있었니?》

어머니는 그만 깜짝 놀라며 손에 들었던 바느질감을 툴렁 떨구어버렸다.

준석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어이구, 우리 예성이 공연하는걸 못 보다니.… 전화받았으면 나한테두 좀 알려줄게지, 원 세상에…》

어머니가 서운해서 옷고름을 눈에 가져가는 바람에 준석은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잠시후 어머니는 대범하게 이런 말을 했다.

《됐다, 공연이 끝났다니 이젠 예성일 데려와야겠다. 아에미두 그렇구… 세대주란 사람이 가족을 떼놓구 와서 어디 됐냐? 남편구실, 아버지구실 하나두 못하구…》

준석은 부정할 말이 없었다. 시간을 다투는 바쁜 일이 앞에 가득한데 어떻게 당장 가족을 데리러 가겠는가 하는 생각에 시원한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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