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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7


관리위원회앞의 기발게양대에 10개의 붉은 삼각기발이 주런이 내리꽂혀 펄럭펄럭 바람에 나붓기고있었다. 작업반별 강냉이파종전투실적순위였다. 그 맨 웃자리에는 역시 2작업반기발이 차지하고있다.

오늘 저녁 관리일군총화때 담당작업반들의 실적을 종합한데 의하면 2작업반은 오늘중으로 강냉이밭전면적에 대한 파종이 끝났다는것이였다. 이것은 기준날자보다 사흘이나 앞당긴 놀라운 실적이였다.

준석은 선뜻 믿어지지 않아 정확한 자료인가고 따져물었다. 그자신이 한시간전에 2작업반포전을 돌아볼 때만 해도 봉황산기슭의 막바지밭은 적어도 하루작업량에 해당한 면적을 남겨두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민영태부위원장은 여유작작한 웃음까지 띠우고 장담하는것이였다.

《아, 정 믿어지지 않으면 래일 첫새벽에 위원장동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면 될게 아니요? 아무렴 내가 나살을 차구 허풍이야 치겠소? 허허…》

그 말도 그럴듯 해서 준석은 믿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관리일군들은 어떻게 벌써 일을 그렇게 제꼈는가고 감탄절반, 부러움절반으로 물었다.

민영태는 겸손을 차리며 그게 다 작업반장의 손탁에 달린거라고 대답했다.

총화모임을 끝내자 준석은 곧장 봉황산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래일 새벽에 나가보라는걸 보아 오늘 저녁 야간작업을 할것이 뻔했기때문이다.

날이 저물었으나 봉황산기슭의 큰골강냉이밭에서는 2작업반이 총 달라붙어 파종을 하느라 벅적 끓고있었다.

영순은 어둠속에서 전투지휘를 하느라 준석이 올라오는것도 미처 몰랐다.

《기술원동무, 파종이 제대로 되였는지 분조별로 뒤따라가며 재여보세요.》

영순의 지시에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젊은 기술원청년이 가위다리처럼 벌려진 평자를 꾹 눌러박고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아무리 반장의 지시라도 이거 뭐 보여야 어쩌지요?》

《남자라는게 전지도 안 가지고 다녀요? 처녀와 산보할 땐 도대체 밤길을 어떻게 걷는지, 자!》

허리끈에 매달았던 전지를 내여주고나서 영순은 또다시 소리쳤다.

《각 분조장들은 밭머리에 모닥불을 피워야겠어요. 그리구 질보장에 주의를 돌려주세요!》

얼마나 소리쳤는지 목이 탁 갈려있었다.

《야― 이거 오늘 혼이 나가는데?》

《이놈의 분조는 왜 이렇게 가동이 안돼서 쩔쩔매는거야?》

《할수 있나? 임신부에 환자까지 둘셋씩 되는걸…》

《환잔지 뭔지 알겠소? 부위원장 아주마인 몸두 좋구 신신펀펀한것 같은데 어데가 그렇게 아픈지 모르겠다니까.》

그러는 사이에 사방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주위가 환해지자 농장원들은 언제 떠들었더냐싶게 맡은 일들을 다그쳐댔다.

영순은 그뒤를 따라가며 질보장이 되였는가를 깐깐히 살펴보았다.

준석은 그 책임성에 탄복하면서도 걱정되는바가 없지 않았다.

《수고하오, 반장동무!》

준석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서야 영순은 놀라 허리를 폈다.

《아이, 위원장동지가… 어두운데 이 골안에까지 올라오셨습니까?》

《모닥불이 어서 오라구 부르는데 안 올수가 있나?》

준석은 팔소매를 걷고 앉아 두손으로 묻어나가기 시작했다.

영순이도 옆의 고랑을 타고 나란히 나갔다.

《헌데 농장원들을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게 하면 되겠니?》

《할수 없지요 뭐, 오늘까지 강냉이파종을 끝내야겠으니. 이제 또 모내기를 하면서 네벌김까지 제끼자면 결정적으로 로력과 시간이 모자라거던요.》

《이자 듣느라니까 이 분조가 가동이 안돼서 애먹는것 같더구만.》

《글쎄말이예요. 사실은 오늘두 이 분조만 아니면 야간작업 안하구두 일찌감치 끝났을텐데…》

영순은 안타까운 기색을 짓고 한숨을 쉬였다.

《어째 이 분조엔 환자가 많으냐?》

《한사람이 아프다니까 련쇄반응이 일어났는지… 어디 사람들의 속을 알겠어요?》

《그걸 그저 그렇거니 하고 방심하지 말아야겠소. 병문안도 해보구 치료대책도 세워주구.》

《예, 알겠어요.》

어느덧 작업이 끝나 농장원들을 내려보낸 후 준석과 영순은 천천히 포전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강냉이파종도 끝냈으니 김매기를 네벌까지 하면 풍작은 문제없겠는데…》

준석의 말에 영순은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참, 우리 시아버님이 주장하는 풍작의 비결 네가지가 뭔지 아세요?》

《덕준아바이가? 그래, 뭐라더냐?》

준석이 흥미가 동해 묻자 영순은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강의》했다.

《첫째 모내기, 둘째 두엄, 셋째 김매기, 넷째 수확 즉 다시말해서 모는 제철에, 두엄은 될수록 많이, 김을 될수록 여러번, 수확을 제때에 허실없이, 바로 여기에 풍작의 비결이 있다는거예요. 그러자면 누구나 자기 집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왕왕 짖을 정도로 일해야 한다는거지요.》

《개가 주인을 몰라본다?》

《아이, 생각해보세요. 어슬새벽에 별을 이구 나갔다가 어슬저녁에 별을 이구 들어오니 개가 언제 집주인 얼굴 익힐새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왕왕 짖을수밖에요. 호호…》

《허허… 정말 그렇구나.》

준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감심한 어조로 말했다.

《덕준아바이는 실농군이야. 모든 농장원들이 그 정신, 그 일본새를 닮기만 한다면 농사가 왜 안되겠니? 헌데 그렇질 못하거던.》

《예, 우리 작업반만 해도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지 못해요.》

준석의 귀전에는 아까 농장원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던 말이 상기되였다. 동시에 덕준로인이 하던 말도…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하면 한곬으로 흐르게 할수 있을가.

영순이 호― 하고 한숨을 쉬면서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준석은 새삼스럽게 영순의 거칠어진 손을 바라보았다. 잡아보니 꺼칠꺼칠하고 마디지고 장알이 박힌 그 손의 꽛꽛한 촉감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동시에 헤여진지 두달이 되여오는 안해의 모습이 부지불식간 눈앞을 가리웠다. 아마도 안해의 보드랍고 매츨한 손과 대조되는 영순의 손이 그런 련상을 가져다준것이리라.

《영순이, 작업반장일이 어때? 헐치 않지?》

따스한 인정이 넘치는 말에 영순은 응석부리듯 스스럼없이 대꾸했다.

《응, 힘들어요. 만사 백가지에 신경을 써야 하니… 그전엔 이렇게까지 힘든줄 몰랐는데 지금은 정말 막 베차요. 생활조건들이 어려우니 사람들을 움직여내기가 더 바쁘군요.》

《작업반장의 능력에서 제일 중요한게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줄 아는 바로 그거다.

통솔력이라는게 뭐겠니? 그저 손탁이 세다는것과는 다르다. 완력과 높은 요구성만 가지고 일할 때가 아니다. 개개 사람들의 특성과 준비정도와 사정을 고려해서 알맞게 처방할줄 알아야 해. 그래서 반원들이 누구나 진심과 의리로써 일하도록 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진심을 바쳐 대중의 심금을 울릴줄 아는것이 진짜 일군의 능력이다.》

《오빠 말씀이 옳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한다는게 정말 힘들군요.》

준석은 심중한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농장원들의 의욕을 높여주자면 결정적으로 자기들이 자기 힘으로 오늘의 애로와 난관을 타개하고 제 손으로 행복을 창조해야 한다는것을 스스로 알도록 하는거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직화로도입을 실현해야 해.》

그의 말을 듣고있던 영순이 반색하며 물었다.

《참, 직화로설계는 어떻게 되여가요?》

《지금 기계화반에서 설계가 완성되구 시제품제작에 들어갔으니까 인차 되겠지.》

《야, 그럼 이번 모내기는 먹었군요. 빨리 원료준비를 해놔야겠네.》

《아무래도 지금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건 젖어서 안되겠으니까 올해는 자체로 예비를 동원해야겠다.》

《걱정마세요. 작업반에 페기시킨 달구지도 둬대 있구 개인집들에도 좀씩 있을거예요.》

신심있게 울리는 영순의 말에 준석은 마음이 흐뭇해졌다.

준석의 집앞에 이르렀을 때 영순이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참, 오빠! 빨리 예성이랑 형님이랑 데려와야지 않아요? 내려온지가 언젠데 아직 독신생활을 하구있어요? 이젠 어머님도 동자질하기 힘겨우실텐데 며느리 지어주는 밥을 잡숫게 해야지요.》

준석은 대답대신 후― 한숨을 지었다. 며칠전 아들애의 전화를 받던 생각이 나서였다.

《이젠 데려올 때도 됐다만 모내기가 박두하고보니 모를 논에 내다꽂아야 마음을 놓을것 같구나. 올해는 어떻게나 우리 선봉리가 남 부끄럽지 않게 농사를 지어야 할텐데…》

《하긴 올해농사결과이자 오빠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도 힘들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구 악을 써서 김 한번이라도 더 매자는거죠 뭐. 앞서나가는 사람이 속도를 높일수록 뒤따르는 사람들도 자연 마력을 낼게 아닌가요?》

《고맙다.》

《고맙긴요, 난 그저 준석오빠 일이 잘되기만 바랄뿐이예요.》

영순의 사심없는 진정은 준석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준석은 발걸음을 되돌려 리당위원회로 갔다.

박정운도 그때까지 사무실에 앉아 밀린 사업들을 처리하고있었다. 그는 회의시간을 제외하고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방바닥에 엉치를 붙이고앉아있는 성미가 아니다. 하루종일 작업반포전들을 팽이치듯 돌면서 걸린 고리들을 알아보고 해결대책을 세우고 해야 할 일들을 앞질러 예견하며 빈틈을 찾아 메꾸어주면서 관리위원장의 일을 말없이 뒤받침해주는것이다. 자기가 해야 할 사업은 이렇게 밤잠을 안 자고 보충하군 하였다.

《당비서동지, 또 밤샘을 하시는군요. 년세도 높은데 몸을 좀 돌보면서 일하십시오.》

《할일이 가득한데 잠이 오나?

그래, 위원장은 언제 이사오겠소?》

박정운은 대뜸 화제를 가정문제로 끌고갔다.

《바쁜 시기나 넘긴 다음에 보겠습니다.》

《허참, 농사군의 한생에 바쁜 시기 아닌 때가 언젠가? 관리위원장답지 않군. 자기 가정 하나 돌볼줄 모르는 사람이 한개 농장의 호주노릇을 어떻게 하겠소?》

《그건 그렇지만… 사실 지금 모내기할 기름도 없어서 야단인데 어떻게 차를 끌고 수백리를 오르내리고 하겠습니까? 대용연료가 성공해서 모내기를 끝낸 다음에는 곧 이사를 하겠습니다.》

《원 사람두, 고정하기란 제 아버지와 꼭 같다니…》

박정운은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어쩐지 심각한 표정이 되여 말을 잇는것이였다.

《허지만 생각을 그렇게만 해서는 안될것 같네. 주관적인 의도는 좋지만 객관들중엔 그릇되게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수 있으니까.》

《무슨… 말들이 있습니까?》

준석은 불안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말은 없어두… 이러저러한 억측으루 위원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가봐 그러네. 그저 늙은이의 로파심으로만 생각지 말게.》

박정운은 이러며 써레기담배를 피워물었다.

《알겠습니다.》

준석은 잠시 동안을 두고 화제를 꺼냈다.

《사실은 당비서동지와 좀 토론할게 있어서 왔습니다.》

《음, 뭔데?》

《지금 우리 일군들이나 농장원들이나 어려운 조건에서 농사를 짓고있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기로 전후시기만큼이야 어렵겠습니까?》

《암, 그야 그렇구말구. 그야말로 재더미우에서 협동조합을 조직했지.》

《지금 형편이 좀 어렵다구 해서 일부 농장원들이 일에 열성을 내지 못하구 농장일을 남의 집 일하듯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한두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사소한 편향이라 할지라도 대중에게 주는 영향은 심각하다고 봅니다.》

준석은 그 표현에 대해 자기가 지금까지 보고들은 사실을 들어 이야기했다.

《옳소, 지금 농장원들에게서 걸린 문제는 농장의 주인이라는 자각이 부족한거요. 그런 현상에 대해서는 절대로 묵과하지 말고 사상교양의 된바람을 일으켜야겠소.》

성격이 급한 박정운은 눈빛을 날카롭게 번쩍이며 주먹을 흔들었다.

준석이 침착하게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서 제 생각엔 전시식량생산과 전후농업협동화에 참가했던 로인들로 로병강연선전활동을 벌려서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각성시켰으면 합니다.》

《거참 좋은 생각이요. 우리가 1950년대에 어버이수령님을 받든 선대들의 그 넋으로 살며 일한다면 극복 못할 난관이 뭐겠소? 지금은 어느때보다두 그때의 정신이 더 절실히 필요하단 말이요.

그렇게 합시다. 로병강연선전활동은 내가 직접 맡겠소.

위원장동문 일군가족들의 로력가동에서 제기되는 편향을 바로잡고 그들을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내밀어주오.》

박정운은 수첩에 부지런히 무엇인가 적어넣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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