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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제 2 장

길은 많아도

11


모내기시작을 며칠 앞둔 어느날 드디여 기계화반수리분조에서는 직화로제작을 끝냈다.

봉황산에서 참나무를 찍어다 일정한 길이로 토막내고 다시 잘게 쪼개여 말리우는 작업도 미리 선행시켜놓았다.

이날 아침 시험가동이 선행되게 될 기계화반마당에는 박정운과 준석을 비롯하여 기사장, 부기사장, 부위원장 등이 모여와있었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금혁이가 완성된 직화로를 모내는기계우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여느때와 같이 준수하고 행동도 침착하였다.

지금 그의 가슴은 걷잡기 어렵게 두근거리고있었다. 제대로 될가? 과연 이 나무쪼각들이 휘발유를 대신하여 모내는기계를 돌려줄수 있을가?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며 설계와 제작에서는 바늘끝만 한 오유도 없다고 확신한 상태이지만 왜서인지 불안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이제 몇분후일지, 아니면 몇시간후일지 모를 그때에 가서 그는 성공의 환희와 실패의 절망, 두 극단의 어느 하나를 맛보아야 한다. 그 중간이란, 즉 평온이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철판을 갈라 자동차의 목탄가스로모양으로, 그 4분의 1크기로 만든 직화로를 모내는기계의 운전석뒤에 발판으로부터 30센치가량 띄워 조립하였다. 밑판은 철근으로 만든 둥근 고정틀로 받쳐주게 되여있었다. 직화로의 위치를 그렇게 잡았기때문에 량옆의 모공급수들의 작업에도 지장이 없게 되였다.

직화로는 로체안에 불목과 로스돌이 있고 웃면은 나무넣는 입구로서 뚜껑을 여닫게 되였으며 로체겉면에는 맨 하단에 재터는 구멍이 있고 20센치가량 우로 올라가 바람구멍이 뚫어져있었다.

로체안에서 발생된 가스는 한쪽 웃부분에서 뽑아낸 팔뚝굵기의 무쇠관을 따라 랭각기를 거쳐 반대켠 아래쪽의 작은 단지만 한 물통에 이르는데 거기서부터 모내는기계 앞머리에 위치한 발동기까지 쇠관과 고무호수로 련결되게 된다.

마침내 설치와 조립을 끝낸 금혁은 침착하게 다음공정으로 넘어갔다. 적당한 량으로 포장해놓은 참나무쪼각들을 로뚜껑을 열고 쏟아넣었다.

그리고 기름묻힌 천쪼각에 불을 붙여 바람구멍으로 넣고 거기에 풍구아구리를 맞추어 바람을 쏘아주었다.

순식간에 로아구리로 진한 감백색연기가 뭉클뭉클 타래져올라갔다.

이제 참나무쪼각들이 이글이글 불타 숯으로 화할 때 가스가 생산되는것이다.

대략 5분정도 풍구를 돌리였을 때 구름처럼 토하던 연기의 색갈이 빨개지면서 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금혁은 풍구질을 멈추고 웃뚜껑을 닫은 다음 시동끈을 바퀴에 걸고 힘있게 돌리였다.

순간 퉁탕퉁탕 요란한 동음을 울리며 기계가 가동을 시작하였다.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일시에 《야》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긴장된 눈길들이 기계의 가동상태를 주시했다.

금혁은 시신경과민때문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벗어 여러번 닦아 끼였다.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설계대로 하면 잡관목 10키로그람으로 3시간이상 가동을 보장해야 한다. 그만한 시간이면 적어도 거의 한정보의 모내기를 할수 있다. 따라서 잡관목 30키로그람이면 모내는기계의 하루가동을 보장할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둘러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손목시계들을 들여다보며 발동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0분… 20분… 30분…

인생을 토막치는듯 한 분분초초가 숨가쁘게 흘러갔다. 숱한 사람들의 기대와 념원, 땀과 지혜가 응결된 시간의 흐름이였다. 오늘의 시험결과에 올해 모내기의 성과적보장이 달려있는것이다.

허나… 야속하게도 30분을 겨우 넘기고 발동은 맥없이 꺼져버리고말았다.

금혁은 가슴이 덜컹하며 눈앞이 새까매졌다. 딛고선 땅이 꺼져내리는것 같았다. 아, 또 실패란 말인가? 메탄가스와 벼겨가스는 실패했어도 직화로에 의한 잡관목가스는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던 금혁이였다.

《일없소, 금혁이! 힘을 내라구. 실패의 원인을 찾으면 될게 아니야?》

준석이 금혁의 등을 두드리며 고무해주는 말이였다. 허나 그 말은 오히려 금혁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제 원인을 찾아 다시 하기에는 너무도 시간이 부족했다. 모내기가 눈앞에 닥쳐온 때의 시험이여서 그 실패가 주는 절망은 더욱 컸다. 그것을 발기하고 떠밀어준 관리위원장의 실망은 오죽하랴. 그앞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단 말인가?

《위원장동지! 절… 혼자 있게 해주십시오.》

금혁은 처량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모여섰던 사람들은 흩어져가면서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첫 시험이 이 정도면 대단하지 뭘 그래?》

《천리길도 한걸음에서 시작된다구 이젠 시작을 뗐으니 성공에로 가는거야.》

《첫술에 배부르겠나?》 하고 판에 박은 말을 멋적게 반복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직 아버지 민영태만이 일언반구없이 담배만 피우다가 돌아서 가버렸다.

그것이 더더욱 금혁의 가슴을 아프게 자극했다.

실패한 아들의 정상이 애처롭고 가긍해서일가? 아니면 아버지로서의 수치심과 자격지심때문일가? 그것도 아니면 아들에 대한 실망과 불만때문일가?

금혁은 아버지의 불만이 자기가 아니라 준석관리위원장에게 향한것임을 알수 없었다.

휴계실에 머리를 떨구고 앉아 담배만 피우고있는데 피뜩 눈앞에 수향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의 시운전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써오고 함께 밤을 지새며 고생했던가? 그가 실패한걸 알면 얼마나 락심천만해할가?

금혁은 머리를 흔들며 벌떡 일어났다. 빨리 실패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처녀앞에 부끄럽지 말아야 한다는 지각이 화약같이 분발심을 일으킨것이였다.

그는 공구를 찾아들고 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불통안에는 타다만 참나무숯이 거멓게 죽어있었다. 발생된 가스가 기관으로 빨려나가는 힘에 의해 불이 타게 되여있는데 가스가 나가지 못하니 자연히 죽어버린것이였다.

가스가 련결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일가? 어디에 결함이 있는걸가? 설계상오유인가? 아니면 제작상의 잘못인가?

설계도면과 로부분품들을 하나하나 대조해보았으나 0.01미리의 편차도 없이 정확했다.

분명 설계자체가 잘못되였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

신경을 모으고 분석하면서 머리를 짜내고 또 짜내보았으나 도저히 알아낼 길이 없었다.

(설계와 제작은 정확한것 같은데 왜 발동이 죽었을가?)

금혁은 좀처럼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 해체한 로를 다시 조립하고 시운전을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조용히 혼자서 해보자. 아까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이여서 너무 긴장했던것 같애. 금혁이, 제발 침착하라.

같은 방법으로 불을 지피고 시동을 건 다음 이번에는 시간측정이 아니라 바람구멍안으로 불상태를 관찰하였다. 이번에도 불은 피다 말고 원인모르게 죽어들었다.

금혁은 머리가 터질것만 같았다. 이마와 코등에 진땀만 빠질빠질 흘렀다.

그때 누군가가 창문을 열고 관리위원장한테서 오는 전화를 받으라고 소리쳤다.

금혁은 한숨을 쉬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갔다.

송수화기를 받아들고 귀에 대니 준석의 청청한 음성이 미끄러지듯 울려나왔다.

《그래, 어떻게 됐소? 원인을 찾아냈나?》

《아직…》

《응, 모르겠단 말이지.》

《분명 설계상의 결함은 결함인데… 제 머리로는…》

《알겠소, 너무 신경쓰지 마오. 이젠 머리가 포화될만두 하지. 중요한건 신심을 잃지 않는거야.》

《고맙습니다, 관리위원장동지!》

금혁은 눈물이 나는것을 느끼며 목멘 소리로 중얼거렸다.

《금혁이, 이젠 머리를 좀 쉬울겸 군농기계작업소에 가보고 오지 않겠소?》

《작업소에요?》

《응, 알아보니 거기서도 직화로도입을 시도하구 몇차례 실험까지 해보았다누만. 아직 성공은 못했지만 뭔가 경험적인걸 교환할수도 있지 않겠나?》

《예, 가보겠습니다. 당장…》

금혁은 귀가 번쩍 띄여 환성을 지르듯 대답했다.

《점심때두 다 됐는데 밥이나 든든히 먹고 떠나라구!》

통화를 끝낸 금혁은 숨이 차게 집으로 달음쳐갔다.

마침 일나갔던 어머니도 금방 들어서는 참이였다. 돼지물바께쯔부터 들고 나가던 유미옥은 아들을 보자 급히 물었다.

《시운전이 어떻게 됐니?》

《어머니, 돼지물 이따 주구 빨리 밥부터 좀 줘요.》

동문서답에 유미옥은 눈이 떼꾼해졌다.

《아니, 시운전이 어떻게 됐나 물어보는데 얜?》

《아직 안 끝나서 이러잖아요? 시간이 급한데 빨리요!》

《아유, 거 땀이나 좀 씻구 말하려마. 국 데울 동안 세면장에 들어가 목욕이나 해라.》

미옥은 뜨물솥을 내려놓고 탄불우에 국가마를 올려놓았다.

《야― 데워먹을 시간이 없다는데두?》

《너야 삼복더위때두 하루 삼시 더운국만 찾는 앤데 찬국을 어떻게 먹는다구 그래? 얼른 덥히니까 조금만 기다려.》

외아들이여서 금혁이에 대한 애정이 끔찍한 어머니였다. 어려서부터 애지중지하며 음식도 골라먹이고 잠결에 이불이라도 차던질세라 꼭꼭 여며주었으며 누구한테 손가락 하나 다칠세라 장난세찬 아이들의 놀음판에도 절대 끼여들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여름철에 수영하러 강에 나가는것도 물에 빠질가봐 겁나서 학교수영장에만 나가게 했다.

그런탓에 금혁이 사내싸지 못하게 조용하고 참한 소년이 되였는지 몰라도 어머니는 아들의 좋은 머리에 위안을 가지고 일관하게 부추겼다.

《넌 눈도 나쁜데 그저 공부를 잘해야 해. 남자가 지내 참한게 흠이라고 하지만 너같이 마음 곱구 깨끗한 애한테 누가 싸움을 걸어오겠다구 걱정이냐? 그저 공부 잘해서 기술로 나라에 이바지하구 공로를 세우는게 제일이다.》

유미옥은 그만큼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들의 요구라면 무엇이나 다 들어주었고 어떻게든 잘 먹여 건강하게 키우려고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금혁은 식성이 좋지 못했고 몸도 실해지지 않았다. 대학에 보낸 후에도 기숙사생활하는것이 맘놓이지 않아 먼 친척벌되는 집에서 생활하도록 쌀과 부식물을 인편에 보내주군 하였다.

정성을 기울인 덕에 금혁이가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도농업기계화연구소에 배치되였을 때 미옥은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들 키운보람이 헛되지 않았다고, 이제 아들덕에 도회지에 가 살게 되였다고 사람들도 부러워했었다.

헌데 남편이 아들을 농장에 끌어다놓았던것이다.

그것이 남편을 위한것이였든, 금혁이자신의 의향이였든 이왕지사 내려온 이상은 맡은 일을 잘해서 빨리 발전을 해야 하지 않는가?

《어머니, 뭘해요? 빨리 가야 된다는데…》

금혁은 자전거를 마당에 끌어내다 뽐프질을 하고 들어오며 독촉했다.

《아니, 자전거는 왜?》

《급히 군에 갔다올 일이 있어서 그래요.》

금혁은 어머니가 상을 차려주기 바쁘게 급히 몇술 뜨고나서 집을 나섰다.

정오의 해볕이 내려쪼이는 길로 부지런히 자전거를 달리느라니 땀이 철철 흘러내렸다.

얼마후 그는 농기계작업소 정문에 이르렀다.

아직 오후출근시간이 안되여 접수원아바이와 마라초를 나누어피우며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기사장과 기술자들을 만나보고나니 맥이 탁 풀렸다.

한가닥의 희망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농기계작업소에서도 금혁이와 꼭같은 착상과 원리로 직화로를 만들었는데 역시 꼭같은 원인으로 실패하였던것이다.

더우기 그들은 이미 몇번의 실험을 반복한 끝에 이미전에 포기한 뒤였다. 발생한 가스가 좀처럼 고르롭게 련결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을 도저히 알수가 없다는것이였다.

《자동차에는 되는데 왜 모내는기계에는 안될가요?》

금혁의 안타까운 물음에 한 기술자가 대답했다.

《자동차의 가스로는 이렇게 용량이 크기때문에 불을 왕왕 피워 가스를 산생시키지만 모내는기계는 4분의 1밖에 안되는데 가스발생이 시원하게 될턱이 있소? 될것 같으면 우리가 먼저 했지.》

그러니 결론적으로 안된다는것인가? 정말 안될 일을 가지고 헛고생을 했단 말인가?

금혁은 너무도 아뜩하고 허무해서 차마 발길을 옮길수가 없었다.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관리위원장에게 가서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또 수향이에게는?

눈앞이 새까매지고 딛고선 땅이 꺼져내리는것만 같았다.

멍청히 서있는 그가 하도 보기 딱했던지 누군가 동정어린 말로 한마디 했다.

《직화로가 안된다는건 어디서나 다 공인된건데 뭘 그리 고민인가? 저 은천군 작업소에서도 한다고 하댔는데 끝내 그만두었다지 않나?》

금혁은 터벅터벅 자전거를 끌고 나오다가 스르시 멈춰섰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너무도 면목이 없지 않는가? 은천까지 가보고 오자. 그만두었다 해도 혹시 그새 무슨 방도를 찾았는지 어이알랴. 은천이면 여기서 60리길이다. 선봉리까지는 왕복 130리 그래도 좋다. 최속으로 달리면 4~5시간 걸릴것이다.

행여나 하는 한가닥 미련이 이런 용단까지 내리게 하였으나 고생스레 찾아간 은천농기계작업소에서도 같은 대답이 기다리고있었다.

벌써 저녁이였다.

지칠대로 지친 그는 힘들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도중식사도 돈 한푼도 없이 떠난 걸음이라 주린배를 달릴 길이 없었다. 자전거를 운전할 힘도 없어 손잡이에 몸을 의지하고 가까스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천신만고하며 선봉땅에 들어섰을 때는 어느덧 자정이 가까운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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