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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 3 장

사랑을 가꾸라

3


박수향은 요즘 대용비료때문에 눈코뜰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사실 대용비료를 만들고 시험하는 과정은 대단히 꾸준하고 완강한 노력을 요구하는것이였다.

수향은 포전마다 각이한 내용의 자급비료를 주고 매일매일 관찰하여 그 결과를 일지에 기록하군 하였다.

아침에 일나올 때는 진거름초롱을 지게로 지고 나왔고 낮에는 봉황산의 깊은 수림속에까지 들어가 삭정이를 져내렸다.

옥수천과 수로밑의 감탕흙을 파다 혼합재료로 쓰기도 했으며 강냉이뿌리를 태워 소토구이한것을 리용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일을 송리순이 조력해주었다.

그들은 모내기를 하는 바쁜 속에서도 짬짬이 자급비료원천을 찾아다녔다.

하루에 한번씩 시험포에 들려 조언을 주군 하던 김준석이 어느날 군에 회의갔다 와서 귀가 번쩍 트이는 말을 했다.

읍농장에 농업과학원 연구사가 현지시험연구차로 내려와있는데 그는 바로 얼마전에 대용비료를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것이다.

그 말을 전하면서 준석은 수향이에게 그 연구사를 한번 만나보는게 어떠냐고 의논조로 물었다.

《아이, 좋습니다. 가보겠어요.》

수향은 뛸듯이 기뻐했다.

낮에는 시간이 없어서 일을 끝낸 저녁에 가보기로 했다.

밤길이라 금혁이와 함께 동행했으면 좋겠는데 그도 저녁마다 직화로연구에 붙으니 할수 없었다.

그는 금혁이한테 오늘 야간작업에는 자기가 못 나온다는걸 알릴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금혁이 모르게 대용비료에 관한 희한한 발견을 해가지고 와서 그를 깜짝 놀래우고싶었다. 금혁이가 대용연료를 성공해서 만사람의 축하를 받을 때 자기도 그에 지지 않게 뭔가 훌륭한것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호상성에 기초한 자기들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꽃펴날게 아닌가고 스스로 훈시했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온 수향은 외출복을 갈아입고 손가방에 자기가 연구한 자료들과 함께 고급담배도 두어곽 넣었다.

중앙연구기관의 박사선생님을 찾아가는데 준비가 허술해서야 되랴.

거울앞에 서서 머리모양새와 얼굴, 옷매무시를 깐깐히 살펴보고나서야 그는 집을 나섰다.

읍농장까지는 15리가 좀 넘었다.

그는 팔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부지런히 걸음을 다그쳐 아홉시경에 목적지에 닿았다.

리합숙이 어디냐고 물으니 리당뒤의 《ㄱ》자형건물을 가리켜주었다.

마침 그쪽에서는 은은한 기타소리가 울려오고있었다.

(어떻게 맞아주실가? 거절하지나 않을가? 아니, 저명하신 박사선생님이니 필경 너그럽고 도량도 깊으실거야.)

수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잡고 발볌발볌 담장안에 들어섰다.

버드나무아지가 드리운 등나무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던 젊은이가 그를 띄여보고 물었다.

《누굴 찾아왔습니까?》

미끈하게 쭉 빠진 젊은이의 모습을 일별하며 수향은 당돌한 자세를 취했다.

《전 농업과학원 박사선생님을 만나러 왔어요.》

《박사요? 무슨 일로 말인가요?》

《전 박사선생님을 만나러 왔다지 않나요?》

《허허… 저한테 미리 말하면 안되겠습니까?》

《안돼요. 동무가 뭐 박사선생 서기쯤 되는가요?》

《서기가 아니라 제가 그 연구사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수향은 어처구니없어 깔끔하게 눈을 흘겼다.

《아이 참, 전 롱담할 시간이 없어요. 박사선생방이 어딘지나 좀 대주세요.》

《허허… 거야 대드리지요.》

젊은이는 일어서더니 오른쪽채의 끝방으로 다가갔다.

그가 손기척도 안하고 출입문을 쑥 여는 바람에 수향은 눈이 둥그래졌다. 아무리 허물이 없기로 박사선생의 방문을 그렇게 무례하게 열다니…

그런데 젊은이가 문을 열어놓고는 제법 웃으며 《어서 들어갑시다.》 하지 않는가?

잠시 얼떨떨해있던 수향은 비로소 방금전의 말이 롱담이 아님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니,그럼… 선생님이 정말?…》

《왜요? 제가 박사같지 않은 모양이지요?》

《어마나, 그런게 아니라… 아이, 미안합니다. 제때에 알아보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자, 어서 편히 앉으시지요.》

젊은 박사의 소탈한 웃음에 수향은 차츰 마음이 놓였다.

그래 자리를 편히 잡고 앉아 자기 소개를 하였다.

박사도 자기 이름을 류심철이라고 하면서 물었다.

《그래,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밤길을 왔는가요?》

《전 우리 선봉리농장의 대용비료도입을 담당한 기사예요. 박사선생님이 화학비료를 대신할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셨다는 말을 듣고 도움을 받고싶어 왔습니다.》

수향은 가방을 열고 시험일지를 꺼내 내밀었다.

류심철박사는 진지한 탐구자의 눈으로 주의깊이 한장한장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각종 대용비료의 구성과 혼합방식, 비률, 토질에 따르는 시비방법과 함께 그 각이한 효과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되여있었다.

젊은 박사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동의 빛이 차츰 더 짙어가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말 수고가 많았군요. 이것만 봐도 수향동무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 이악성과 헌신성엔 머리를 숙일수밖에 없군요.》

수향은 얼굴이 꽈리빛이 되여 머리를 저었다.

《아이, 전 칭찬받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농장을 좀 도와달라구… 사실 우리 농장은 전후에 협동화를 남먼저 해서 수령님께서 잊지 않고 늘 추억해주시고 찾아오시였던 농장이랍니다.》

《아, 그래요?》

수향은 어느덧 활기를 띠고 명랑하고 발랄한 자기 성격으로 되돌아갔다.

《예, 이름처럼 전국의 선봉이 되라고 어버이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그 어느 농장보다 더 많은 현지지도를 하여주시구 더 많은 사랑을 돌려주셨지요 뭐.

정말 사기나게 앞장에서 씽씽 내달려왔는데 지금 나라사정이 어려워지구 영농자재가 보장되지 못하니 일시 난관을 겪고있는거랍니다.

사실 관리위원장동지두 평양에서 자원해 내려왔지, 다른 농장보다 농사를 잘 지어야 할텐데 그렇다구 화학비료를 더 많이 쓰는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순 없지 않아요?》

《그렇군요. 내 수향동무의 그 마음을 봐서라두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이, 정말인가요?》

《허허… 내가 어째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박사선생님.》

수향은 그제야 생각나 가방안에 손을 넣고 담배곽을 만지작거렸다.

《저… 담배를 좋아하시나요?》

《아니, 난 담배를 안 피웁니다.》

《네… 그래요?》

수향은 못내 서운해서 손을 도로 꺼냈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참, 박사선생님. 우리 선봉리에 언제 오시겠습니까?》

《인차 나가야지요. 그러찮아도 여기 농토들을 한번 쭉 편답해보려던 참입니다.》

《그럼 제일선참으로 선봉리에 와주세요. 그때 저의 집에 꼭 들리셔야 해요.》

《그럽시다.》

《아이, 약속했어요.》

수향은 기뻐하며 며칠내에 선봉리에서 만날것을 거듭 다짐받아냈다.

류심철박사는 실속있는 사람이였다.

이튿날 그는 자재공급소에 온 선봉리화물자동차를 만나 거기에 타고왔다.

기계화반에서 내린 그는 여기 시험포가 어딘가고 물었다.

민영태는 호기심이 나서 시험포의 누구를 찾느냐고 묻다가 박수향이라고 하자 새삼스런 눈으로 젊은이의 용모를 훑어보았다.

그는 담배불을 붙여 한모금 빨고나서 말을 걸었다.

《그래, 어디서 왔소?》

《농업과학원에서 왔습니다.》

《평양?》

《예.》

영태는 내심 놀라며 제잡담 그를 시험포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이런 멋쟁이청년이 평양서 예까지 처녀를 찾아왔다는게 보통일로 심상히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슬슬 말을 유도했다.

《우리 수향이야 정말 인물로 보나 일솜씨로 보나 또 마음씨로 보나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처녀지요.》

《예, 정말 아름답구 불같은 처녀더군요. 저도 사실 그 열정에 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으음…》

민영태는 신음하듯 외마디소리를 냈다. 쇠꼬챙이같은것이 두뇌에 쿡 박혀드는것 같았다. 그래도 설마하고 머리를 흔들어버리고 흔연한 소리로 수향을 찾았다.

《얘, 수향아! 평양서 손님이 왔다.》

《평양이요?》

모내기를 하던 수향이 의아해서 허리를 펴더니 모춤을 집어던지고 첨벙첨벙 달려나왔다.

《아이, 약속을 지키셨군요. 고마워요, 선생님!》

수향이 얼굴에 함박꽃이 펴서 기뻐 어쩔줄 모르는걸 보니 민영태는 눈꼴이 시여 견딜수 없었다.

《선생님, 점심때도 다 됐는데 저의 집부터 가는게 어때요?》

《어떻게 집에부터…》

《아이, 그때 약속하시지 않았나요?》

영태는 더 듣기가 괴로와 휭하니 돌아서버렸다.

한편 수향의 집에서는 농장을 도와주러 온 연구사라고 박정운과 오봉연이 성의를 다해 식사를 대접하고 극진히 환대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심철은 수향의 안내를 받으며 시험포전을 구체적으로 밟아보고 토질검사를 해보았다. 그리고나서 자기가 연구한 질석이 이 농장토양에 결정적인 의의를 가진다는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니까 질석이 화학비료를 대용한단 말이지요?》

《그렇소, 질석과 화학비료를 같은 비률로 혼합하여 시비하면 전량 화학비료를 시비하는것과 맞먹는 효과를 내지요.》

《아니, 그게 사실인가요?》

《이건 내가 여러 현지들에서 실험으로 론증한거요. 실지 이런 방법으로 명산리에선 전량 뇨소를 시비한것보다 질석을 절반 섞어 시비한것이 오히려 벼수확고가 더 높아졌다오.》

《그래요?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해보아야겠군요.》

수향은 두손을 맞잡고 환희에 넘쳐 부르짖었다.

《문제는 질석원천인데…》

《그게 그렇게 귀한건가요?》

《아니지. 있는데는 많고 없는데는 아예 없고 그렇소. 매장량이 제일 많은데가 저 명산리더군요.》

《그럼 명산리에서 날라다 우선 시험을 해보고 그동안 원천을 찾아보는게 어떨가요?》

《그게 좋을것 같습니다.》

이어 심철은 질석의 화학조성과 특성에 대해, 그것이 어째서 뇨소비료와 화합되면 그 효과성을 배로 높여주는가 하는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이날 그는 수향이 자체로 만들어놓은 대용비료들과 흙보산비료생산공정들도 돌아보면서 일일이 조언을 주었다.

그리고 질석의 리용정형과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자주 들려보겠노라는 약속까지 하였다.

수향은 류심철박사의 사심없는 방조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면서 떠나는 그를 따뜻이 바래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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