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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제 4 장

땅은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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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위원장실에서는 이른아침부터 두시간에 걸쳐 관리위원장들의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

활짝 열어젖힌 창문들로 흘러든 삼복철의 무더운 해볕이 사람들의 몸에서 내풍기는 땀내와 열기에 합쳐져 방안의 공기를 더욱 달구었다.

어떤 사람들은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연송 땀을 묻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웃단추를 끄르고 경영위원장의 눈치를 보아가며 가볍게 손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앞에서 선풍기가 부지런히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고있었으나 그 넓은 방안을 식히기에는 너무나 용량이 부족했다.

회의참가자들의 속을 달구는것은 단지 자연이 주는 열때문만은 아니였다.

회의에서는 농작물비배관리문제가 심각히 론의되고있었다.

비료시비, 김매기, 논물관리, 병해충구제, 밭작물관수…

여기서 제일 걸린 고리는 역시 비료문제였다.

모든 관리위원장들이 너나없이 비료부족을 호소했다. 영양실조에 걸려 벼들이 노랗게 마르는데 이삭비료가 모자라 큰 야단이라는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그렇게 비료들을 갈망하였으나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더욱 속이 타는것이다.

김대일위원장은 모든 농장원들이 흙보산비료를 비롯한 자급비료를 더 많이 생산하여 농작물의 성장발육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로력을 총동원하여 김매기를 와닥닥 해제낄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비료, 비료 하고 우는 소리만 하지 말고 그럴새면 김매기를 한번이라도 더 하시오. 김매기 한번 더 하는게 비료 한번 치는것만 못지 않소.》하고 오금을 박았다.

관리위원장들이 일시에 술렁거렸다. 입을 쩝쩝 다시는 축들도 있다. 한결같이 불만스런 얼굴들이 《김매기가 비료를 대신해주는가?》하는 표정들이다.

그래도 실태가 실태이니 내놓고 불평을 터놓는 사람은 없다.

병해충구제를 위한 생물성농약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읍농장에서 과학원 연구사의 방조로 대용농약을 만들어쓰고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고 하오. 담배우림액, 쑥우림액 등 원천이 확고한 대용농약들을 모든 농장들에서 적극 받아들여야겠소.

대용비료생산에서는 선봉리가 아주 잘하고있소.

모든 농장들이 선봉리에서처럼 우에서 대주면 좋고 안 대줘도 자체로 한다는 배심을 가지구 자력갱생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조건은 다 같기때문에 각자의 책임성은 가을에 수확고를 놓고 평가합시다.》

회의는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끝났다.

밖에서는 지질듯 한 뙤약볕이 내려쪼이고있었다.

선봉리로 돌아오는 준석의 마음은 납덩이마냥 무거웠다.

대용비료와 대용농약은 그렇게 지지하고 선전하는 경영위원장이 어째서 직화로에 의한 대용연료도입안은 시답지 않아하는것일가? 성공의 담보가 없고 전망성도 없다고 보기때문일가?

경영위원장이 선봉리를 진심으로 위해주는것은 사실이며 하다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착잡한 생각에 잠겨 자전거를 달리던 그는 선봉리와 서원리를 경계짓는 부정천다리쪽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살을 태울듯 한 뙤약볕아래서 허리까지 빠지는 물속에 들어가 장풍을 베여내는 두 녀인의 모습이 눈에 걸렸던것이다. 리순이와 수향이였다.

안해의 까맣게 탄 얼굴이 오늘따라 별로 애처롭게 안겨온다.

언젠가 덕준아바이가 경제선동때 협동화시기 농사짓던 이야기를 하면서 쑥과 장풍을 베여 작두로 잘게 썰어 진거름에 재워 썩였더니 좋은 거름이 되더라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짬만 있으면 열성스레 쑥과 장풍을 베여들이는 그들이였다.

그러느라고 안해는 집에 들어와 꼼짝 못하고 쓰러져 온밤 앓음소리를 내군 한다.

시험포를 맡은 저 연약한 녀성들에게 화학비료를 얼마간만 대여주면 저런 고생을 안 시킬수 있는건데…

하지만 시험포전에서부터 대용비료의 덕을 보게 하자는것이 준석의 드팀없는 결심이였다.

얼마전 휴식일에는 준석이 수향과 함께 온종일 봉황산주변일대를 톺아 질석원천을 찾아내고야말았었다.

그때 찾아낸 흙덩이를 두손에 쥐고 마구 얼굴을 비비며 울던 수향을 생각하며 그에게로 시선을 주던 준석은 죄를 지은듯 한 생각에 가슴이 쿡 찔리웠다. 군에 들어갔던 길에 금혁이를 만나보고 왔어야 하는걸…

언제나 생기발랄하던 수향의 얼굴이 수심을 띠고 흐린 하늘처럼 침침해있는걸 보니 가슴이 알알해났다.

(못된 녀석… 처녀의 가슴에 못을 박아놓구 달아나다니…)

준석은 의분을 누르며 지그시 자전거의 발디디개를 눌렀다.

리당위원회에 들리니 여느때와 같이 젊은 부원 한사람밖에 없다.

《당비서동지는 오늘 오전에 작업반포전들을 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준석은 당비서와 회의내용을 토의해야겠기에 곧장 포전으로 자전거를 돌리려다가 고쳐 생각하고 집에 들어가 작업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박정운은 봉황산 큰골밑의 로인분조포전에 박영순과 함께 있었다.

준석이 올라오는것을 보자 그는 마침이라고 하며 손을 들어 량옆포전들을 가리켰다.

《이것 보오 관리위원장동무, 이 로인분조포전밭과 저기 3분조밭의 강냉이포기들이 어떻게 차이나는가? 한날한시에 심은건데 말이요.》

과연 로인분조포전의 강냉이포기들은 그 옆밭의 연하고 가느다란 포기들과 대조되게 하나같이 키가 크고대가 실하며 잎색갈도 진하고 소담했다.

《자, 어디 말해보라구. 영순반장! 원인이 어데 있나?》

당비서의 물음에 영순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로인분조에선 김매기를 벌써 다른 분조보다 한차례를 더 한데다가 매일 아침점심 나올 때마다 거름지게를 지고 나와 포기마다 묻어줍니다. 한번도 빈손으로 다닐 때가 없습니다.》

《이젠 그만 일손을 놓고 쉬라는데두… 자각된 헌신은 이렇게 알찬 결실을 낳는 법이지.

땅은 진심을 바치는것만큼 보답할줄 알아.

다른 분조원들도 눈달렸으면 보구 느끼는게 있겠는데 왜 다들 따라배우지 못하나? 로인들이 이렇게 하는데 젊은것들이 힘이 모자라서 못하겠소? 머리가 문제거던, 머리가!》

리당비서의 격한 말을 들으며 영순이 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반장동무, 이제라도 로인분조를 통한 실물교양을 단단히 하오. 그래서 모든 분조들이 이만한 수준에서 비배관리를 정상화해나가야겠소.》

《알겠습니다.》

준석은 박정운당비서가 어쩌면 요진통을 잡아채준다는 생각이 들어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듯싶었다.

그는 당비서와 함께 큰골밭을 내려오면서 오늘 회의에서 제기된 농작물비배관리와 관련한 대책적문제들을 토론했다.

대용비료와 대용농약 만드는 실무적인 문제들에 합의를 보고나서 정운이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의 사상을 발동시켜야 하오. 로인분조포전은 다 김 한대없이 깨끗한데 다른 포전들은 왜 그렇지 못한가? 왜 뼈심을 들여 일하지 않는가. 농사를 잘 짓는것이 우리의 사회주의를 지키는 길이라는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지 못하고있는데 문제가 있는거요.》

당비서의 말을 심중히 새겨듣느라니 준석이도 스스로 가책되는바가 컸다.

《옳습니다. 저부터가 그런 뼈저린 체험이 없다보니 교양사업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금혁이도 떠나갔는데… 저 오늘 군에 회의 갔다가도 그 애한테 들려보지 못했군요. 당면한 농사 생각에만 몰두하다나니…》

정운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걸음을 옮기다가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뇌였다.

《실은 내 금혁이 달아난 그날 밤으루 읍에 쫓아들어갔었네.》

《예?! 당비서동지가요?》

준석은 흠칫 놀라 멈춰섰다.

흰서리와 주름살이 더 많아진듯싶은 당비서의 옆얼굴을 새삼스레 지켜보는데 그는 흔연한 어조로 계속했다.

《그럴수밖에 있나? 내 딸 수향이와 관련된 문제인데… 그러잖아도 그런 일이 있기 며칠전부터 딸애의 거동이 수상쩍다 했지. 금혁이가 농장을 떠났을 때 이게 필경 수향이와의 어떤 불미한 감정때문에 빚어진게 아닌가 하고 대뜸 의심이 가더군. 물론 다른 외부적인 압력이나 자체모순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건 원인이라기보다 동기에 불과하다고 보아집데. 솔직히 말해서 수향이가 끝까지 변치 않구 잘 도와주었으면 금혁이같이 마음 어지구 깨끗한 청년이 그렇게 머리가 돌수 있었겠나?》

준석은 박정운당비서의 인간적인 깊이에 또 한번 가슴이 뭉클했다.

한참만에 박정운이 의논조로 《그래, 관리위원장은 직화로를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요?》하고 물었다.

준석은 이미 생각해오던바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물론 이제라도 다른 기술자들을 인입해서 밀고나갈수도 있겠지만… 사람문제가 아닙니까?》

《옳은 생각이요. 대용연료도입은 절대로 중도반단할수 없는 문제이지만 동시에 금혁이도 절대로 외면할수 없는 우리 선봉리청년이란 말이요. 난 그가 일시적인 감정때문에 그리고 나약성때문에 달아나버렸지 결코 근본이 나빠서 고향땅을 버렸다고는 생각지 않소. 고향땅을 꽃피우겠다구 도소재지에서 온 기특한 젊은이가 아니였소? 그런데 그 장한 뜻을 꽃피워주구 빛내여주어야 할 우리 일군들이 갈테면 가라고 등을 돌려대서야 안되지. 그건 뿌리뽑힌 나무를 죽으라고 내버려두는것과 같애. 우린 그 뿌리를 이 대지에 깊이 묻어주고 토양을 든든히 덮어주고 다져주어야 해. 다시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그래야지요. 제 당장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준석은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렇겐 안될거야. 제나름의 일가견이 있는 젊은이를 강압적으로 목을 매서 끌어올수야 없지 않나? 내가 그때 금혁일 당장 돌려세우지 못한것두 그때문이였네. 그의 가슴엔 괴로움이 꽉 차있었구 그 상태에서 온대야 아무 일도 할수 없었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두 제 스스로 깨닫구 제발루 오게 해야 하네.》

《!…》

역시 성미가 급하면서도 그릇이 큰 당일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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