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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 4 장

땅은 흔들리지 않는다

3


이튿날 아침 송리순이 잠을 깨여보니 남편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

부지런하고 새벽잠이 없는 어머니덕분에 이른새벽밥을 먹고 먼저 나가는것은 늘 있는 일이였지만 지난밤 남편이 들어오는것을 못 보고 잠들었던 리순이여서 죄스럽고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

도대체 언제 들어왔다 언제 나갔담?

리순은 남편이 깔아주고 덮어주었을 포단이며 모포를 눈물이 글썽해서 쓸어만지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대학시절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때 아무리 이를 악물고 뛰여도 준석을 따를수 없었던 자신이 불현듯 생각키웠다.

그때처럼 지금도 남편의 뒤를 좀처럼 따르기 힘들어하는 자신이 막 안타깝고 한스러웠다.

하루일을 끝내고 들어오면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노그라들어 아들애의 음악공부를 보아줄 기운도 없었다. 또 일단 잠들면 새벽 일찌기 깨여나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남편이 깨워주었으면 좋으련만 인정많은 시어머니가 만류하고 자신이 아침밥을 짓군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리순은 늘쌍 시어머니와 남편앞에 죄스러운 심정이였다.

《평양서 고이 자란 몸으로 땅을 다루는 농사군이 된것만도 용하지. 새벽조반 못 짓는다고 누가 탓할가, 조금두 어려워말아. 그저 집살림걱정은 아예 말구 농장일만 잘하면 된다.》

현씨는 늦잠을 자고 미안해하는 리순을 이런 말로 달래주며 아침밥상을 차려주었다.

공기밥을 먹던 리순에게는 어머니가 큰 밥사발에 무둑히 담아주는 강낭밥에 토장국이 처음엔 아름차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이 농사군은 일한것만큼 먹고 먹은것만큼 일하는 법이라며 어머니앞에서 될수록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단단히 이르기에 어느덧 리순이도 밥량이 퍼그나 늘어났다.

농사군이 된다는게 정말 말처럼 쉽지 않았다.

화장을 해도 땀흘려 일하느라면 얼마 못가 얼룩이 지고만다. 옷장에 가득한 외출복들도 별로 입어볼 날이 없었고 매일같이 흙물오른 작업복을 닦아입어야 한다. 굽높은 구두만을 신고 다니던 그가 습관되지 못한 편리화를 신고다니자니 걸음걸이도 얼마나 부자연스러웠던지 모른다.

이 모든것을 두고 리순이 언제한번 후회하여본적이 있었던가?

오직 남편의 일이 잘되기만을 매일, 매 순간 바랄뿐이였다.

그런데 직화로가 계속 실패하고 사람들속에 쉬쉬하며 돌아가는 관리위원장에 대한 실망의 소리를 듣게 되니 아픈 가슴을 견디기 어려웠다.

아침식사가 끝나 예성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리순은 총총히 시험포로 갔다.

벼포기들의 아지수와 잎수를 관측하여 기록하고나서 논물의 깊이와 온도를 재여본 다음 이삭비료를 칠 준비를 하려고 포전막으로 갔다.

그러는데 손달구지를 끌고 나타난 수향이 소리쳤다.

《언니, 창고에서 비료를 준대요. 어서 가자요.》

《뭐? 비료를?》

《예, 이번엔 비료가 넉넉히 왔다니까 이삭비료는 걱정이 없게 됐어요.》

《야―이런 때가 다 있니?》

리순은 땀을 씻으며 기뻐서 환성을 질렀다.

화학비료와 혼합한 대용비료를 듬뿍 먹고 이삭을 패워올리는 벼포기들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두 녀인은 손달구지채를 맞잡고 리창고에로 갔다.

창고앞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기다리고있었다.

화물자동차의 적재함에 비료포대 몇개가 실려있는데 그옆에 준석관리위원장과 민영태부위원장이 마주서서 서로 노려보고있는것이였다. 주위엔 비료를 타려고 달구지들을 끌고온 기술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굳어져있었다.

리순은 심장이 경련을 일으킨듯 화드득 떨려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 애써 실어온 비료를 도루 실어보내다니? 어쩌믄…어쩌믄 이럴수 있소? 온 농장이 눈이 까매 쳐다보는 이 비료를…》

민영태가 푸들푸들 떨리는 손을 내흔들며 격노한 소리를 질렀다.

준석이도 불을 뿜듯이 웨쳤다.

《부위원장동무한테 내 몇번을 말했습니까?

량심을 속이고 가져온 비료로 농사를 지으면 안된다고! 우린 어디까지나 깨끗한 량심을 이 땅에 묻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니 그래, 량심, 량심 하다가 농사를 못 지어놓으면 그땐 어떻게 하겠소? 농사군의 량심은 오직 열매가 말해준다는걸 모르우? 농사군이 농사를 망쳐놓으면 입이 열두개라도 할말이 있는가 말이요? 어디 말해보우!》

영태의 도도한 반격은 한순간 준석의 입을 얼어붙게 했다.

리순은 눈앞이 새까매지며 비칠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가다듬는데 준석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귀전을 쩡 울렸다.

《그만하시오! 누가 농사를 망친다구 했소? 누가? 나는 오직 량심이 가리키는 한길밖에 모르는 사람이요. 우리때문에 다른 농장이 피해를 보게 할수 없단 말이요.

어서 마저 실으시오, 창고장동무!》

창고장을 바라보는 준석의 눈에서 불길이 황황 쏟아져나오는듯싶다.

리순은 아직까지 남편에게서 저렇게 성난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남편에게 저렇듯 과격한 기질이 내재해있은줄은 상상도 못했던 리순이였다.

언제나 호인처럼 느껴지던 민영태까지 격분하여 웨쳐대니 이러다 무슨 일이 나겠는지 가슴이 떨려 견딜수 없었다.

농장원들이 비료지대들을 한쪽 어깨에 메고 나오기 시작했다.

얄팍한 입술을 사려물고 고리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민영태가 문뜩 랭소를 떠올리며 내뱉었다.

《좋수다. 그렇게 완력행사를 하니 내 더 막지는 않겠소만 그래도 경험있는 년장자의 말 한마디만은 똑똑히 새겨듣기 바라오.

관리위원장동무가 말하는 그 량심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량심인가? 농장원대중이 간절히 바라는게 무엇인가? 이걸 똑똑히 알고 일처리를 하라는거요.》

찍어박듯 하는 말에 준석은 눈섭을 꿈틀하였다.

휭하니 달아나려던 영태가 한마디 더 내던졌다.

《솔직한 말루 관리위원장이라면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교섭해서 물자 하나라도 더 끌어다주어야 옳지 않소? 그러진 못할망정 오히려 실어온것까지 되돌려보내는 관리위원장을 누가 좋아한단 말이요?

휘발유도 내가 끌어오지 않았으면 모내기를 어떻게 할번 했소?》

민영태는 다른 사람들이 듣건말건 큰소리로 웨치고나서 가던 길로 헐금씨금 사라져갔다.

(아, 어쩌면 부위원장이 저런 말을 마구…)

리순은 그만 눈물이 와락 쏟아져나와 두손에 얼굴을 묻고 돌아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집마당에 들어선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벼짚단우에 쓰러졌다. 머리속이 핑핑 돌아가고 심장이 아프게 옥죄여들었다. 어깨가 세차게 들먹거리며 하염없는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도 평양을 뒤에 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남편의 소중한 지향이 모독되는것이 가슴아팠고 사람들앞에서 남편의 가슴에 못을 박은 부위원장이 야속해서 울었다.

한참만에야 동통이 멎으며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가까스로 일어나 맥없는 걸음으로 시험포에 나가니 그새 수향이가 비료를 타다놓고 흙보산비료에 혼합하는 중이였다.

《언니, 좀 어때요?》

수향은 못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응, 괜찮아.》

리순은 시진하게 대꾸하고 말없이 일손을 맞잡았다.

수향은 호―한숨을 쉬고는 시무룩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어떻게 리순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야 할지 말마디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아까 관리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언쟁을 함께 목격한 그는 놀라움과 격분이 새록새록 사무쳐와 부위원장의 옷자락을 잡아흔들며 한바탕 분풀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가뜩이나 자기의 진정을 차던지고 달아난 금혁을 용서할수 없는 수향이였는데 그 아버지인 민영태부위원장에게서 전에 볼수 없었던 거칠고 무례한 행동을 보게 되자 더더욱 의분이 끓어올랐던것이다.

지금 리순의 수심겨운 얼굴을 보느라니 이번엔 준석관리위원장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불쑥 났다.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끄떡없이 서서 자기의 뜻을 실천하고야말던 그 완강함에 가슴이 뭉클해오기도 했다.

준석관리위원장이 무엇을 믿고 민영태의 집요한 반대에도 끝내 비료를 실어보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수향은 정신이 번쩍 드는것 같았다.

리순의 곁에 다가앉으며 대범하게 말했다.

《언니, 너무 상심 말아요. 우리가 일을 더 잘해서 관리위원장동지 마음을 풀어드리면 돼요.》

《수향이, 넌 어쩜…그렇게 마음이 곱니?》

리순이 눈물이 글썽해 떠듬거리는 말이다.

그는 꺼지게 한숨을 쉬고나서 중얼거렸다.

《난 어쩐지 부위원장동지 말이 무심하게 들리질 않더구나. 그러다 정말 농사가 안되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누굴 탓하겠니?》

《아이, 안되긴 왜 안된다구 그래요?

관리위원장동지가 하시는 일은 다 잘될거예요.》

《호, 얘두 참…》

리순은 서글픈 웃음을 짓고 정겹게 수향을 바라보았다. 처녀의 티없이 깨끗하고 순진한 마음이 더없이 고마왔다. 그리고 그토록 명백하고 단순한 그의 성격이 못내 부러웠다.

나도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안해된 녀자의 마음은 쉬이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그는 하루종일 웃음을 잃고 쓸쓸한 심경에 싸여 내키지 않는 일손을 놀렸다.

오후의 해가 다 저물어갈 무렵에 준석이 시험포에 나타났다.

아침에 당한 일은 감감 잊은듯 평소와 같이 우선우선한 얼굴이였다. 허나 리순은 하루사이에 볼이 푹 꺼지고 눈에 피발이 진데다 입술마저 나무껍질처럼 터갈라진 남편의 지친 기색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점심식사때도 들어오지 않은 남편이였다.

설음이 왈칵 북받쳐 얼른 외면하고 입술을 피나게 깨물었다.

준석은 여전히 흔연한 표정을 짓고 흙보산비료생산정형을 알아보고 수향이와 함께 포전들도 돌아보았다. 그는 오전에 해당된 량의 비료공급이 끝나는 차례로 각 작업반들을 순회하면서 대용비료도입정형을 료해하고난 뒤였다. 역시 대용비료도입과 효과는 시험포가 그중 락관적이였다.

《수향이, 화학비료가 부족한 조건에서 이제부터 흙보산비료생산량을 더 바짝 늘여야겠소.》

《예, 걱정마십시오. 관리위원장동지!》

수향은 여느때보다 더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그런데 오늘 리안을 돌아보니 진거름원천이 거의 바닥난것 같더구나.》

준석이 걱정스레 말했으나 이번에도 수향의 대답은 시원스레 울려나왔다.

《걱정마십시오, 리에 없으면 읍에 가서 실어오면 되지요 뭐.》

《괜찮아, 난 수향이만 보면 탁 트인 바다를 보는것 같은게 기분이 거뜬해지거던. 하하…》

그 웃음도 어째선지 자기의 괴로움을 감추어보려는 일부러스러운것으로 리순에겐 느껴졌다.

《헌데 리순동문 왜 저기압인가?》

준석이 안해의 흐린 얼굴을 보고 롱조로 묻자 눈치빠른 수향은 얼른 자리를 피했다.

리순은 아무래도 억한 심정을 터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텅빈 경비막으로 들어갔다.

《왜? 무슨 일때문에 그래?》

준석이 의아한듯이 물었다.

《예성이 아버지! 당신은 어째서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못해 그런 모욕을 당하나요?》

리순이 대뜸 눈물이 글썽해서 울먹거리는 소리로 말하자 준석은 놀란 기색을 지었다.

《어째서인가구? 당신이 그걸 몰라서 묻소?》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리해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량심이 무엇에 필요한가요? 난 이렇게 오해와 비난을 받는 당신을 보자고 평양을 떠나온게 아니예요.》

리순은 어느덧 격해서 부르짖었다.

《…》

준석은 깍지낀 손에 무릎을 안고 눈을 감은채 한동안 아무 말도 안했다.

참다못해 리순이 또 애원하듯 떠듬떠듬 뇌였다.

《제발 빌어요, 예성이 아버지!

앞으로 더는… 사람들과 의가 상하는 일이 없게……하겠다는걸…약속해주세요.》

눈물을 머금은 그의 눈은 애절한 소원을 호소하며 바르르 떨었다.

준석은 한참만에야 눈을 뜨더니 심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래도 당신만은 내 마음을 리해해줄줄 알았는데… 섭섭하구만. 내가 달리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걸 잘 아는 당신이 말이요.》

《당신의 그 마음이 왜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나요? 당신이 모욕당하는걸 보는 제 마음이 얼마나 쓰리구 아픈지… 당신은 알기나 하세요? 흑…》

리순은 두손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었다.

준석의 손이 안해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만하오.…당신의 심정을 내 왜 모르겠소?

당신은 우리 선봉사람들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것 같소. 어느 한두사람을 놓구 선봉사람모두에 대해 속단해선 안되오. 일부사람들이 반대하고 막아선다 해도 그들을 설복하고 깨우쳐서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할 내가 아니요?

리순이, 당신은 내가 여기 내려오기 전에 장군님께 올린 편지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회답서한을 잊지 않았겠지?》

《제가 어떻게 그걸?…》

리순은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럼 됐소. 우린 누가 뭐래도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되오. 조금이라도 당의 의도에 어긋나고 량심에 꺼리끼는 일에 대해서는 보고만 있을수 없소. 죽어도 이 신념만은 베고 죽어야 한단 말이요.》

《예성이 아버지! 제가 그만 잘못 생각했어요.

당신의 그 마음을 따르지 못하구 이렇게 괴로움을 더해준 저를 용서해주세요.》

《난 당신이 일시 마음이 나약해질순 있어두 절대 변하지 않으리란걸 아오.》

《고마워요, 예성이 아버지!》

리순은 남편의 팔에 살풋이 머리를 기대며 속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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