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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39 회


6


찌는듯 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있었다.

폭양이 쏟아지는 말미재의 구석진 강냉이밭에서는 지금 2작업반 3분조의 김매기가 한창이였다.

봄볕에 대기는 난로안처럼 더워져 그것을 들이쉴 때마다 숨이 콱콱 막히는듯 한데 호미날로 고랑의 땅을 긁을 때면 바싹 마른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군 한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김을 매는 농장원들의 맨앞에는 막냉이 명준이가 휘파람을 불며 나가고있었다. 땅땅 말라붙은 고랑을 두손에 쥔 호미로 벅벅 긁으며 한참동안 속력을 내여 나가던 그는 문뜩 허리를 펴고 돌아서더니 머리에 질끈 동이였던 수건을 벗어 얼굴의 땀을 문대였다. 애젊은 혈기라 놀 땐 놀더라도 할 땐 벼락치듯 해야 시원해하는 성미다.

그의 눈길은 맨 뒤꼬리에서 굼벵이처럼 기여나오는 유미옥에게 가 멎었다. 전이 넓은 하얀 등산모를 쓴 그는 울상을 하고 물집이 잡힌 손을 들여다보고있었다.

명준은 그쪽에 대고 큰소리로 웨쳤다.

《미옥아주머니, 내 한가지 물어볼테니 알아맞춰보라요!》

《뭘 말이야? 뚱딴지같이…》

미옥은 엉겁결에 내동댕이쳤던 호미자루를 집어들며 눈을 떼꾼하니 떠올렸다.

《에― 김매기를 왜 전투라고 하는지 알아요?》

《엉?》

미옥이 어처구니없어하는데 분조원들이 모두 재미있는듯이 돌아본다.

그바람에 당황해난 미옥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대답이 나갔다.

《아, 그야 뭐 전투니까 전투지 뭐.》

와하하 폭소가 터져올랐다.

나이지숙한 분조장이 껄껄 웃다가 명준에게 어디 네가 한번 대답해보라고 부추겼다.

《왜 전투인가? 말그대로 강냉이의 원쑤 김놈들을 소멸하는 치렬한 육박전이기때문이지요.》

또다시 하하호호 웃음판이 터졌다.

《정말 그럴듯 한걸? 허허…》

《신통히도 꼭 맞는 소리예요, 호호…》

명준은 시침을 뻑 따고 호미 든 손을 추켜들며 증오에 차서 부르짖었다.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요. 강냉이의 생육을 방해하구 우리들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이놈들이 바로 원쑤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눈에서 불이 일구 틀어쥔 호미날이 총창처럼 느껴지는게 막 멸적의 힘이 솟구친단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옳다! 명준이가 제일이다!》하는 호응소리에 이어 또다시 왁자그르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자―또 한번 나가보자!―》

《나가보자!―》

분조원들은 돌격선에 선 병사들마냥 기세를 올리며 왁왁 호미질을 다그쳐나가기 시작했다.

미옥이도 아닌게아니라 무성한 김이 원쑤처럼 느껴져 육박전을 하는 심정으로 호미날을 힘껏 들이박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힘은 또다시 진해버리고 숨이 가빠오며 허리가 쑤셔나기 시작했다. 무슨 놈의 땅이 이렇게 쇠깝대기같이 딴딴하고 풀은 또 왜 이렇게도 많은지… 한숨이 나갔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구석밭인데다가 경사급한 비탈밭이여서 토심도 얕고 관수와 시비조건도 불리하지, 후치도 대기 힘들지 그러니 해마다 소출은 얼마 못 내면서도 그대신 김이 이렇게 성하군 했다.

그래서 거의 해마다 이 분조, 저 분조로 돌려가며 다루는 밭이라 반적으로도 관심을 덜 돌리는 곳인데 더우기 지금은 맨 나중으로 매는 초벌김이여서 더 한심했다.

명준이도 호미날이 연방 챙그랑챙그랑 돌에 부딪치자 화가 나서 툴툴거렸다.

《에익, 들지 않는 면도날이 살을 벤다더니 변변치두 못한 이놈의 밭이 김매기는 제일 말째단 말이야.》

땅을 욕했다, 풀을 욕했다하더니 이번엔 무더운 날씨를 욕했다.

《비라도 한소나기 콱 쏟아부으면 좋으련만 왜 저렇게 말쑥해서 뙤약볕만 쏟아붓는지? 에익.》

분조원들은 힘겹게 일하면서도 막냉이의 투정질소리에 즐거운 웃음을 그칠줄 몰랐다.

유미옥은 웃을 기운도 없었다. 언제면 이 더위와 힘겨룸이 끝나려나하고 손목시계만 자꾸 내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점심때가 되려면 아직 두시간은 있어야 한다. 멀리 앞서 김을 매는 분조원들을 보니 갑절로 힘겹게 생각되였다.

명준이가 목이 마른듯 물바께쯔를 들여다보더니 《야― 물도 다 마셨구나.》하고 밑바닥의것을 통채로 들어 입에 쏟았다. 목이 타드는 갈증에 마른 기침을 삼키던 유미옥은 제꺽 일어나 그리로 갔다.

《내 그럼 후방사업이나 할가. 시원한 오이랭국에 얼음을 띄우구 달달한 도마도화채도 만들어올테니.》

《야―거 듣기만 해도 군침이 슬슬 도누나야. 분조장동지, 미옥아주머니를 내려보내자요.》

《마을까지 갔다오자믄 퍽 시간이 걸릴텐데 가까운데서 샘물이나 떠다먹지 뭐.》

《아유, 걱정두 원. 내 빨리 갔다오겠수다.》

미옥은 바께쯔를 들고 얼른 밭아래로 내려갔다.

다문 얼마간이라도 허리쉼을 하게 된것이 다행스러웠다.

집에 들어온 그는 선풍기부터 틀어놓고 의자에 털썩 몸을 묻었다.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구 땀을 좀 들이구보자 하는 배심이였다.

(빨리 금혁이가 군에 자리를 잡아야 할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깜박 잠든것이 깨여보니 30분이나 지나갔다.

미옥은 황급히 일어나 오이랭국을 만들고 랭동기에서 얼음물을 꺼내부었다. 그리고 이미 해놓았던 도마도화채에 사탕가루를 아낌없이 푹 쏟아가지고 법랑소랭이에 담았다.

그가 작업장에 이르니 기다리기에 지친 분조원들이 왜 이제야 오느냐고 입이 한발씩 나와 눈들을 흘겼다.

《아유, 부지런히 움직인다는게 그렇게 된걸 어떡해요? 자, 어서 시원히들 들어나보라구요.》

미옥은 늦어온 미안함을 눙치느라고 설레발을 쳤다.

목이 말랐던 사람들이라 꿀처럼 달게 마시였다.

이때 박영순이 올라왔다.

《아니, 분조장동무. 이 손바닥만 한 뙈기밭 김을 아직두 못 매서 벌벌 기구있어요? 당장 군에서 나와보겠다는데 이 구석에서 그냥 헤매고있으면 어떻게 해요?》

영순은 눈을 세모지게 뜨고 한심하다는듯 다그어댔다.

《아무렴 이 외진데까지 와보자구 하겠소? 큰길에서도 30분이나 톺아올라와야 하는델…》 분조장의 늘어진 대답에 영순이 발끈했다.

《여기가 문제가 아니라 저 탈곡장앞의 밭이 급선무란 말이예요.》

《아니, 거기야 제일먼저 김을 매지 않았소?》

《글쎄 제일먼저 맸으니까 그동안 풀이 또 자랐지요. 그 밭은 우리 반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군에서 선봉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아닌가요? 첫 인상이 중요하다구 거기서부터 우리 선봉사람들의 일본새가 평가된단 말이예요.》

《알겠수다, 오늘중으로 이 밭을 떼먹구 래일 아침엔 그리루 가붙겠수다.》

《래일 아침이 뭐예요? 래일 아침이? 그땐 벌써 늦어요.…》

잠시 생각하던 영순은 단호하게 잘라말했다.

《안되겠어요. 아무래도 이 밭은 하루종일 걸려두 못 떼겠는데 중지하구 오후엔 저 아래밭으루 내려가야겠어요.》

《중지하다니? 그럼 여긴?》

《이왕 늦은김에 하루쯤 미루어서 마저 매도록 하자요.》

반장이 일단 결론하면 누구도 흐지부지할수 없다는것을 아는 농장원들은 말미재의 밭을 절반쯤 남겨둔채 오후에는 탈곡장주변의 강냉이밭김매기에 붙었다.

이튿날 군내협동농장들의 농작물비배관리정형을 돌아보던 김대일경영위원장이 오전 한식경이 지났을 때 선봉리에 도착하였다.

티 한점없이 깨끗한 2작업반 탈곡장과 꽃밭처럼 가꾼 주변의 논밭들을 보고 감탄하던 김대일이 반장을 찾았다.

그는 영순을 보자 대뜸 반색을 했다.

《아, 영순반장이로구만. 논밭가꾼걸 보니 강냉이, 벼농사에서도장훈을 부를수 있겠소.》

김대일경영위원장은 흐뭇해서 한마디 더 했다.

《농사도 잘 짓고 작업반도 잘 꾸려서 2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해야 해.》

《예. 판정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영순의 오목눈이 야심만만하게 빛났다.

같은 시각, 준석은 말미재의 구석진 강냉이밭을 돌아보고있었다.

그는 깎다만 머리처럼 무성한 김이 덮인 밭뙈기를 보고 놀라서 멈춰섰다. 어째서 이렇게 했을가? 분명히 오늘 아침 두벌김매기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모르고 지나쳤을가? 일맵시가 앙큼하고 여무진 영순반장이 설마 그럴리야 있을라구?

어쨌든 따져보고 대책해야 할 일이여서 그는 영순을 만나려고 부지런히 내려왔다.

그런데 관리위원회앞마당에 승용차가 서있고 그앞에서 김대일이 이야기를 하며 서있는것이 보였다.

준석이 다가가며 인사를 하자 김대일은 환한 웃음을 짓고 반기였다.

《관리위원장동무, 수골 하오. 엊그제부터 다녀보던중 여기 선봉리가 제일 눈이 번쩍 뜨이누만.》

《그렇습니까?》

《이제까지 2작업반 탈곡장과 논밭들을 돌아봤는데 빈포기나 풀 한대도 없구 생육상태두 아주 좋더란 말이요. 역시 박영순이가 깐지구 알심있는 실농군이더군. 한방울의 물방울에 온 우주가 비낀다구 이 작업반의 일솜씨이자 곧 농장전체의 실태가 아니겠소.》

결국 그것은 관리위원장에 대한 평가였다.

김대일은 얼마전 준석이가 여분으로 더 준 비료를 되돌려보낸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그때 준석관리위원장이 비료를 되돌려보냈을 때 노여움보다도 걱정이 앞섰소. 그러다가 농사를 잘못 짓게 되면 후회하지 않겠는가 하구말이요. 그런데 남들과 꼭같이 부족되는 비료를 가지구두 다른 농장들에 비해 이렇게 비배관리가 잘되고있는걸 보니 마음이 놓이오. 아무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데 어련하겠소, 허허…》

준석은 얼굴이 화끈 달아옴을 어쩔수 없었다.

《준석동무, 앞으로도 군의 핵심이 되구 선봉이 돼서 모든 농사일에 모범을 보여주시오. 선봉리에 대한 군의 기대가 크다는걸 항상 잊지 마오.》

김대일은 기대어린 눈빛으로 준석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알겠습니다.》

준석의 대답소리는 저으기 무겁게 울렸다.

경영위원장을 바래우고나서 그는 곧장 2반탈곡장으로 나갔다.

영순은 기술원이 분조들에 농약을 나누어주는것을 일일이 거들어주고있었는데 기분이 좋아보였다.

작업반실로 그를 데리고 들어간 준석은 다짜고짜로 엄하게 따졌다.

《그래, 말미재강냉이밭김은 왜 매다 말았소?》

《아니, 거기까지… 올라가셨댔어요?》

영순은 흠칫 놀라 당황히 되물었다.

《그러니 알고있었구만.》

《저 급해서 순서를 바꾸었어요. 그러잖아도 오늘 오후에 마저 매자구 했댔어요.》

《그래 구석진 밭이라구 차별하는 그 땅이 너를 원망하구 욕하는 소리가 안 들리더냐?》

조용하면서도 엄한 물음에 영순은 얼떨떨해졌다.

그다음엔 억울한듯 부르짖었다.

《차별하구싶어 한건 아니예요. 사실 오빠 망신시키고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우리 작업반이야 리의 시작이구 얼굴인데… 모든 일엔 선후차가 있는 법이 아닌가요? 때리면 우는척이라도 하랬다구 웃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관점문제도 있지 않아요?》

《땅에 대한 관점이 글렀다. 땅은 농사군의 량심을 비쳐주는 거울이다. 그러니 누구보다두 땅에 잘 보여야 해. 땅은 절대로 못 속인다는걸 똑똑히 명심해라, 알겠니?》

준석의 준절한 타이름에 영순은 눈길을 떨구며 나직이 응대했다.

《예.》

《그리구 아첨이 곧 도덕이 아니라는걸 알아야 해. 가식과 아첨이 웃사람을 위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위험한짓임을 잊지 말구 늘 경계해야 한다. 내 말뜻을 알겠니?》

《예.》

영순은 한숨을 쉬고나서 대답했다.

《내가 대일위원장에게서 제일 공감하고 존경하는것이 바로 아래일군들을 믿고 내세워주는 진실하고 대바른 성품이다.》

자리를 일면서 준석은 이렇게 덧붙였다.

영순이와 나란히 정문으로 나오던 그는 문뜩 생각난듯 화제를 돌리였다.

《참, 만난김에 좀 물어보자. 너 남편하구는 왜 마음을 못 맞추구 티각태각하는거냐?》

한참만에야 영순은 쓸쓸하게 대꾸했다.

《마음을 맞춘다는게 어디 쉬워요?》

《못 맞추는 근본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니?》

《내가 작업반장을 그만두면 어떨는지? 그저 살틀한 안해, 충실한 가정주부가 돼야겠지요.》

《그러니까 호영이가 너의 사업을 리해해주지 않는다는거냐?》

《그래요, 그 사람은 달라졌어요. 자기도 자존심을 가진 남자라는거예요.》

영순은 격해서 쌓였던 울분을 내쏟았다.

《아니다, 내 보기엔 영순이한테 더 문제가 있는것 같다.》

《저한테요?》

《물론 일만 일이라구 내몬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너도 남편을 깔보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전에도 말한적 있지? 녀자가 제일만 일이라구 가정생활을 홀시하면 가정의 화목이 유지될수 없다구. 어떤 경우에도 녀자는 녀자다워야 하는거야. 사람들이 내세워주구 사업부담이 커지니까 남편이 점점 더 하찮게 여겨진다는거냐? 그의 약점만 더 크게 보이구. 정말 그래?》

《…》

《걱정이다. 그러다 점차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겠는지? 벌써 뜨락또르사고를 내지 않았니? 그래가지고 사람들의 존경받는 작업반장이 될수 있겠니?》

《…》

영순은 머리를 숙이였다.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여나왔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 중요한건 남편을 혁명동지로 대하구 그에게 진정을 주는거다.》

《알겠어요.》

그러는 사이에 영순의 집앞에 이르렀다.

《오늘 점심은 여기서 먹을가?》

준석이 웃으며 묻자 영순은 못내 기뻐서 대답했다.

《아이, 그러세요. 우리 운전수동무도 기뻐할거예요.》

《그래? 허허…》

준석은 껄껄 웃으며 영순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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