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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제 4 장

땅은 흔들리지 않는다

7


휴식일이였다.

정춘화가 조반을 먹고 설겆이를 하는데 밖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뜻밖에도 한창세가 서있었다.

《분공 수행하러 왔소.》

그는 던지듯 말하고 대문안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분공이라니… 무슨 분공이예요?》

춘화는 의아해서 창세가 들고 온 공구함과 옆에 낀 널판자들을 번갈아보았다.

《제대군인출신당원으로서 후방가족을 잘 도우라는거요. 돼지기르기에서 모범이 되게… 리당비서가 직접 주더구만.》

창세는 그러니 할수 없지 않느냐는듯 한 태도를 짓고 다짜고짜 뻰찌를 꺼내 돼지우리의 헐어빠진 판자쪽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춘화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눈길을 허둥거렸다. 정말 당비서가 그런 분공을 주었는지, 주었다면 왜 하필 혼자 사는 사람한테 주었는지 괴이쩍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온 사람을 가라고 할수도 없고 참 난사였다. 창세는 아무 소리없이 톱질, 망치질만 직심스럽게 했다.

그제야 춘화도 정신이 들어 제할바를 찾았다. 리유는 어찌됐든 자기 집일을 해주는 사람인데 인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춘화는 부리나케 터밭에 나가 노랗게 속이 올라오는 통배추를 뽑아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배추속을 송송 썰어 소금을 뿌려두고 밥을 지으면서도 그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

춘화는 남편을 따라 선봉리로 시집온 다음 얼마 살아보지 못했다.

남편이 불치의 병으로 사망했던것이다.

그때부터 춘화는 남편이 남기고간 쌍둥이아들을 구김살없이 밝게 키우는데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혹시 남들이 아버지없는 자식이라고 숙볼가봐 늘 왼심을 쓰면서 살아왔다.

쌍둥이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여름날 한창세가 논물관리공으로 일하는 논벌에서 개구리잡이를 한적이 있었다. 그때 한창세는 사정을 두지 않고 쌍둥이를 닦아세웠다.

아들들의 눈물섞인 하소연을 들으며 춘화는 밤새 이불깃을 눈물로 적시였다.

(제아무리 실농군이래도 너무하지 않는가?

그까짓 개구리 몇마리가 무엇이라구?)

춘화는 제 설음에 겨워 몰인정한 한창세를 끝없이 원망하였다.

다음날 아침 한창세가 나무로 자작 만든 말을 가지고 유치원에 찾아와 쌍둥이아들한테 주고갔을 때 웅심깊은 그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때부터 창세는 겨울이면 연이며 썰매, 팽이 등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여름에는 미역도 감겨주군 했다.

쌍둥이아들이 군대에 입대할 때에는 배낭을 메고 역에까지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그리고나서 창세는 발길을 끊었다. 그의 사람됨이 워낙 녀자들과 살뜰히 대할줄 모르는 뚝한 까닭도 있었지만 홀몸인 춘화가 뒤말이라도 듣게 될가봐 념려하는 심정에서였다. 만약 춘화쪽에서 어떤 피치 못할 일이 생겨 도움을 청했다면 그는 기꺼이 나서줄 용의도 있었던 사나이였다.

운명이란 얼마나 공교로운것인가?

3년전 한창세의 안해가 난치의 병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날줄을 어찌 알았으랴. 그때부터 한창세나 정춘화는 약속이나 한것처럼 더 멀리 피해다녔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할가봐 겁을 내듯이…

지난 봄 정춘화가 새끼돼지를 놓쳐 안타까와할 때 그놈의 새끼돼지가 한창세의 손에 잡히는 바람에 우연히 마주서게 되였지만 알지 못할 불안만을 던져주고 가버리고말았다. 거스름돈을 받으러 오지 않을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찾아가지도 못하겠기에 금옥이한테 들려주었더니 공연히 의심만 산것 같아 마음이 어수선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제발로 불쑥 찾아와 집일까지 도와주는걸가?…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가슴만 두근거렸다.

밥을 다 짓고 나가니 일을 끝낸 창세가 토방에 앉아 담배를 말고있었다. 춘화가 소랭이에 물을 떠다주자 공손히 손도 씻었다.

춘화는 새 판자로 앞도리를 맵시있게 막아놓은 돼지우리를 홀린듯 바라보다가 감사의 눈길을 돌리였다.

《저, 정말 수고했어요.》

《다음번엔 그옆에 잇달려서 새끼낳이칸을 지어야겠소.》

《아니, 뭐 그렇게까지…》

춘화는 돌변한 그의 태도가 놀랍기만 하였다. 더욱더 놀라운것은 정성들여 차린 음식상을 사양않고 받는것이였다. 술 한고뿌에 밥까지 한그릇 다 비웠다. 그리고는 잘 먹었다고, 음식솜씨가 괜찮다고 칭찬까지 하는것이였다.

다음번 휴식날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제 말대로 새끼낳이칸을 지어주었다. 춘화는 남에게 소문이 날가봐 걱정이 산같은데 창세는 상관없다는듯 지붕우에 올라가 기와손질까지 해주었다.

《야― 그러다 남들이 별나게 생각하면 어찌겠어요?》

《남의 눈치 볼거 있소? 무슨 못할짓을 한다구?》

춘화는 창세가 자기를 마음에 두고 열성스레 일거리를 찾아 손을 대고있는줄은 모르고있었다.

그런 나날이 흘러감에 따라 춘화의 가슴에 깃든 불안은 점차 기대감으로 바뀌여졌다. 무엇때문인지 창세의 존재가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졌다. 밤에 홀로 누우면 이상하게도 창세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리며 가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러한 충격과 불안정이 춘화에겐 이전의 고독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하루저녁은 창세가 여느때처럼 와서 일을 해준 끝에 몹시 주저하다가 이런 말을 꺼냈다.

《춘화동무, 내 이런 생각은 일생 하지 말자고 했지만… 사실은 금옥일 위해서 끝까지 혼자 살자구 했댔는데…》

두서없이 떠듬거리고는 담배를 말아붙인다.

춘화는 와뜰 놀라 당장 숨이 가빠올랐다. 《…지만》 《…는데》하는걸 보면 뭘 말하자고 하는지 다 듣지 않고도 뻔했던것이다.

(저렇게도 주변이 없다구야. 남자라는게 끙끙 갑자르기만 하면서…)

성격이 탁 트이고 구변이 좋은 춘화로서는 어리숙한 창세의 성미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창세는 담배 한대를 다 피우고 헛기침을 깇고나서 가까스로 뒤를 달았다.

《아무래도 금옥이를 공부시키자면 집안에 있을 사람은 있어야겠단 말이요. 그러니 낯도 코두 모르는 사람을 데려올수도 없구 그래서…》

춘화는 불시에 눈굽이 찌르르해지면서 금옥이의 아련한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딸을 두려면 금옥이 같은 딸을 두라고 온 마을사람들이 하나같이 칭찬하는 애다.

공부는 또 얼마나 잘하고 똑똑한가.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입에서는 왕청같은 말이 튀여나갔다.

《아니, 그럼 금옥이때문에 나한테 장가들겠다는거예요?

도대체 안해가 필요한가요? 어머니가 필요한가요?》

여기까지 냅다 쏟고난 춘화는 입을 다물었다.

당황하여 허둥거리는 창세의 거동을 보니 인차 후회가 되였던것이다.

이미 뱉은 말을 주어담을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말이 굳은 창세로서는 자기의 진정을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할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더구나 정이 가고 미덥다는것을 알면서도 몰풍스럽게 말한것을 끝없이 후회하고있는데 창세는 창세대로 춘화의 반발에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돌아가고말았다.

동구길로 터벅터벅 멀어져가는 창세의 뒤모습을 점토록 바라보던 춘화는 그만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으며 치마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밤 춘화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머리맡에서는 록음기가 아들들의 목소리를 록음한 테프를 열심히 돌려주고있었다. 쌍둥이들이 읊고 부른 시와 노래들이다. 그 애들이 군대에 떠나면서 혼자 적적하고 자기들을 보고싶을 때마다 들으라고 록음해두고 간것이다.

서정시 《어머니》와 《나의 조국》, 《용서하시라》, 노래 《내가 지켜선 조국》,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의 은은한 선률이 웅글진 아들들의 목소리를 타고 끝없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춘화는 애틋한 추억에 잠겼다.

쌍둥이를 낳은지 두해만에 급병으로 남편을 잃은 뒤 그는 오로지 몸과 마음을 다하여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내세우고싶은 념원뿐이였고 그것으로 그의 생활은 일관되여왔었다. 그 애들때문에 힘든줄도 외로운줄도 몰랐고 바쁘고 분주한 속에서 생의 희열과 기쁨을 찾군 하였다.

커가는 아들들이 남편을 대신했고 남편에게 가야 할 애정을 고스란히 차지해버렸던것이다.

그의 생활의 전부라고도 할수 있었던 쌍둥이들이 한날한시에 군대에 나갔을 때는 대견함과 함께 그리움으로 잠 못들군 했다.

텅 빈 집의 쓸쓸함과 마음속 생활의 공백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들이 교대로 편지를 보내주고 사진도 찍는대로 보내주었던것이다. 그래서 춘화는 그 애들이 그립고 보고싶을 때마다 지금처럼 록음기를 틀어놓고 사진과 편지를 보며 자식들의 체취를 느끼군 하였다.

이러한 생활속에 한창세라는 무뚝뚝한 사나이가 비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춘화의 가슴속에서는 본의아니게 불규칙적인 진동이 때없이 일군 하였던것이다.

그로부터 며칠후 어느날 (그날도 휴식일이였다.) 밀린 빨래감을 비닐버치에 담아 이고 옥수천내가에 나갔던 춘화는 뜻밖의 광경에 흠칫 멈춰섰다. 금옥이가 먼저 나와 빨래를 하고있는데 한창세가 빨래감을 빼앗으며 욕을 하는것이였다.

《누가 널더러 아버지옷을 빨아달랬냐? 래일 당장 도에 간다는 애가 공부는 안하구?》

금옥이는 콜짝콜짝 눈물을 짜며 울먹거렸다.

《그럼 아버지가 빨래를 하겠나요? 엄마두 없는데…》

《뭐라구? 너 그럼 전번날 관리위원장아저씨가 책이랑 학용품을 사가지구 왔을 때 약속한건 잊었니?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하지만… 아버지 혼자 두구 대학에 가야… 어떻게 무슨 정신으루 공부한단 말이예요? 아버지, 제발… 더는 강요하지 말아줘요.》

《뭐라구, 이것아!》

한창세의 손이 딸애의 뺨으로 철썩 날아갔다.

춘화는 못 볼것을 본듯 눈을 꼭 감고 비칠했다. 그러나 다음순간엔 어떻게 그리로 달려갔는지 알지 못했다. 버치를 내려놓자 창세의 손에서 빨래감을 앗아쥐고는 격한 소리로 불렀다.

《금옥아!》

얼굴을 싸쥐고 흐느껴울던 금옥이가 흠칠 놀라더니 빨갛게 젖은 눈을 들었다.

《금옥아, 아버지말씀대루… 어서…》

춘화는 울컥 목이 메여 더 말을 못하고 돌아서 얼마쯤 떨어진 빨래터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온몸이 열에 떠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채 와락와락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탕! 탕!

힘이 진하도록 두드려대는 방치질소리만 쾅쾅 울렸다.

그뒤에 멀거니 굳어져있던 한창세는 급기야 솟구치는 눈물에 두눈을 슴벅이며 뜨거운것을 꿀꺽 삼키고는 딸애의 손목을 잡아이끌었다.


이날 저녁.

정춘화는 자기 집 빨래줄에 널어 말린 창세의 작업복과 금옥이의 교복을 다림질까지 해서 차곡차곡 접어가지고 창세네 집으로 갔다.

늘 안으로 닫겨있던 대문이 그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반쯤 열려있었다.

춘화는 또다시 가슴이 화끈해지며 쿵쿵 널뛰듯 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한참만에야 발자국소리를 죽여 조심조심 마당에 들어서니 방안에선 무엇을 외우는 금옥이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데 부엌에선 밥잦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서툰 칼도마질소리가 쑥떡쑥떡 울리고있었다.

춘화는 안고온 옷보자기를 퇴마루에 올려놓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온 그는 저녁도 먹는둥마는둥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그는 무엇인가 할일을 놓친것처럼 심신이 편안치 않아 잠들수가 없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던 그의 뇌리에는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금옥이가 래일 도에 간댔지? 그 애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때 가만 있지 않았을텐데…)

그는 어느결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 웃방으로 올라갔다. 아껴두었던 찹쌀이며 콩, 팥, 요긴할 때 쓰려고 꽁지꽁지 건사해둔 마른 물고기와 밀가루, 김, 사탕가루 등을 골고루 덜어내여 부엌에 가지고나갔다.

밤을 새다싶이하며 도중식사를 준비한 그는 이튿날 아침 일찌기 집을 떠났다. 도소재지로 가는 뻐스시간은 아침 7시인데 정류소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가 남이 못 보게 주고싶었다. 새벽마다 논물고를 돌아보아야 하는 한창세가 딸을 바래주러 나오지 못할수도 있다.

10리길을 총총히 달음쳐 정류소에 이르니 금옥이가 벌써 나와있었다. 눈이 까매서 선봉리쪽을 바라보던 그 애는 춘화를 보자 반기며 물었다.

《아이, 춘화어머니도 도엘 가시나요?》

《으응? 아 아니, 내가 무슨…》

춘화는 당황해서 대답을 얼버무리고는 말끝을 돌렸다.

《금옥이가 일찍두 나왔구나. 그래, 준빈 다 됐냐?》

《예, 춘화어머니랑 도와줘서…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원 애두, 고맙긴…》

《울아버지 못 봤나요? 인차 뒤따라나오마 했는데…》

금옥이의 눈에 서운한 빛이 어리는것을 보자 춘화는 얼른 꾸며대였다.

《오참… 아버지가 바빠 못 오겠다면서 이걸 보내주더구나. 찰떡인데 많이 먹구 꼭 합격되라구 신신당부하더라.》

《그래요?》

금옥이는 보따리를 받아들고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춘화는 자기의 거짓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얼굴을 활딱 붉혔다.

금옥이는 눈물이 글썽해서 머리를 깊이 숙이였다.

《춘화어머니, 정말… 고마워요.》

《애두 참…》

춘화는 아무말도 못하고 금옥이의 손만 다정히 잡아주었다.

이윽고 뻐스가 발동을 걸었다.

《금옥아, 아버지 걱정말구 가서 시험 잘치구 오너라!》

《고마워요! 어머니!》

떠나는 차창가에 마지막으로 남긴 《어머니》란 그 말이 이상하게 춘화의 가슴을 흔들었다.

처녀에 대한 이름할수 없는 련민의 정을 무죽이 느끼며 춘화는 뻐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

이윽하여 천천히 돌아서던 그는 그만 흠칫하고 굳어졌다. 앞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던 한창세가 어마지두 놀란 얼굴로 멈춰서는것이였다.

숨을 헐썩이며 흐르는 땀을 씻을념도 못하고 뚫어지게 이쪽을 마주보고만 있다.

춘화도 어쩔바를 몰라 눈을 허둥대다가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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