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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제 4 장

땅은 흔들리지 않는다

8


수향의 상처는 예상외로 빨리 회복되여갔다.

김준석이 병원에 면회를 갔을 때는 이마의 붕대를 풀고 바깥산보까지 나오는 정도였다.

환자복을 입고 팔에 부목을 댄 수향을 장미꽃덩굴아래서 만난 준석은 가슴이 저릿해짐을 느끼였다.

《다친 팔이 아직 아프겠지?》

《아이, 이젠 다 나았는걸요 뭐. 다음주엔 부목을 떼도 된답니다. 빨리 퇴원해나가야겠는데.》

《그렇게 조급해선 치료가 잘 안돼. 마음을 푹 가라앉히구 치료에 집중해야지.》

《야―막 갑갑해죽겠습니다. 바쁜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것두 미안하구… 리순언니 혼자서 고생할걸 생각하면 정말…》

수향은 성한 손으로 활짝 핀 장미꽃이파리를 매만지며 애타는 속을 터놓았다.

준석은 그러는 수향을 진정시키려고 등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그래, 금혁이는 만나보았니?》

사실은 리순의 말을 전해듣고 금혁이와 수향이가 화해했으리라 짐작한 그였다.

의외로 수향의 낯색은 쓸쓸해보였다.

《관리위원장동지, 그 동무 이야긴… 더 하지 맙시다. 저두 이젠 생각지 않기로 했어요.》

《뭐? 아니…》

준석은 어찌된 영문인가싶어 수향의 새침해진 얼굴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내려뜬 두눈과 꼭 다문 입… 도대체 어찌된 일일가?

준석이 다시 물었다.

《그래, 정말 금혁이를 만나지 못했단 말이냐?》

《왔댔다고 하지만 전 보지 못했어요.》

괴로운 침묵이 흘렀다.

준석의 가슴속에서는 참기 어려운 의분이 끓고있었다. 사내가 어쩌면… 자기때문에 불상사를 입은 처녀를 한번 찾아와 위로해주지도 못하다니, 적어도 자기의 잘못을 사죄할만 한 그런 용기도 없단 말인가.

수향은 제편에서 준석을 위로하듯 말한다.

《관리위원장동지, 그 동무때문에 너무 고심하지 마십시오. 아무렴 우리 선봉리에 그를 대신할 기술자가 없겠습니까?》

《아니다. 수향이, 우리 너무 속단하지 말자.

금혁이가 왔다가도 만나지 않구 간건 꼭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기때문일게다.》

《어떤 사연이 있든…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에게도 인간의 심장이 있고 피가 있다면… 전 그가 그렇게 심장이 찬 사람인줄은 정말 몰랐어요.》

수향은 어느덧 눈물을 머금고 절규했다.

준석은 어떻게 그 마음을 달래주어야 할지 알수 없었다.

한참만에야 준석은 수향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수향인 지금 금혁이의 깊은 속마음을 다 모르고있다. 내 말이 틀리는가 퇴원하면 가보아라.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있었는지 그때 가서 결단을 내려도 늦지 않는다.》

수향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더니 의미깊은 눈빛으로 준석을 마주보았다.

《위원장동진…정말 금혁동무를…믿습니까?》

또박또박 씹어묻는 그 물음에 준석은 주저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금혁인 절대로 고향을 저버릴 사람이 아니야.》

《고맙습니다, 관리위원장동지…》

수향은 물먹은 소리를 내며 손수건을 눈에 가져갔다. 그의 동실한 어깨가 가벼이 떨리였다.…

병원을 나선 준석은 곧바로 농기계공장을 찾아떠났다.

금혁은 기술준비실 책상앞에 마주앉아있었다.

탁상등을 켜놓은 책상우에는 여러가지 련결농기계설계안들이 쌓여있었다.

금혁의 초점잃은 두눈은 줄곧 다른 곳을 찾고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나저제나 자기의 넋이 깃든 창조물인 직화로설계도만이 얼른거릴뿐이였다.

사실 군병원에서 수향이와의 면회를 포기하고 온 다음 금혁의 고민은 더욱 컸었다. 수향이에게서 배반당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분하고 가슴아플지언정 자기자신을 정당화할수 있는 근거가 명백했고 그것으로 자기를 위안할수 있었다.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는 자기가 지은 죄가 너무도 엄청난것이여서 어떻게 그것을 씻어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였다. 엎지른 물을 퍼담을순 없지 않는가?

제가 쑨 죽은 제가 먹어야 한다지만 차례진 운명을 그대로 감수하기는 너무도 힘에 부쳤다. 직화로연구를 꼭 성공하고야 수향이앞에 나타나리라 결심은 하였으나 그렇다고 도면을 가지려 금방 떠나온 선봉리에 얼굴을 들이민다는것이 참으로 괴롭고 딱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하물며 사람이 아닌가?

새로 온 자기를 그토록 환대해주고 기대도 큰 여기 사람들앞에도 체면없는노릇이였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눌러앉아 자기의 죄를 증대시킬수는 더욱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전전긍긍하고있는데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준석관리위원장이 들어섰다.

너무도 뜻밖이여서 인사말도 미처 못하고 굳어져버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지배인이 나가고 단둘이 마주앉게 되자 금혁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관리위원장동지, 사람으로서 제일 못할짓이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라는걸… 전 떠나온 다음에야 깨달았습니다.》

준석은 헌헌하게 웃으며 금혁의 손을 잡았다.

《깨달았으면 됐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 출발을 하자구.》

《사람이 체면이 있지… 어떻게 오자마자 되돌아가겠습니까?》

금혁은 고심하던 문제를 털어놓고 후― 한숨을 내쉬였다.

준석이 그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의논조로 입을 열었다.

《나두 좀 생각해봤는데 금혁이가 이왕 공장의 기술문제를 맡아안은 이상 당분간 공장일을 보아주면서 짬짬이 직화로설계를 완성해가지고 나오는게 어떻겠나?》

금혁은 애써 찾던 출로가 금시 열리는듯싶었다. 그렇게 되면 공장앞에도 면목이 서고 고향사람들앞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결 떳떳하지 않겠는가? 그래, 무조건 직화로설계를 완성해가지고 나가자!

새로운 신심과 의욕에 가슴이 불타올랐다.

설계도면을 가지러 어떻게 갔다 오겠는가 그가 미처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준석은 들고온 서류가방안에서 차곡차곡 접은 종이를 꺼내놓는것이였다.

《자, 도면이요. 필요할것 같아 가지고 나왔소.》

《예?!》

금혁은 잃었던 보물을 되찾은듯 설계도면을 덥석 안아 펼쳐보았다.

자기의 리상과 지혜와 고심, 사랑과 열정이 하나하나의 선과 점들에 그대로 어려있는 설계도면, 그것은 그대로 그의 넋이고 생명이 아니였던가.

그는 눈앞이 뽀얗게 흐려들어 목메여 부르짖었다.

《관리위원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허허… 내가 고마울게 있소? 사실말이지 그 직화로가 아직은 출생전의 태아이긴 하지만 금혁동무의 발기와 착상에 의해서 그 원점이 생겨나구 골격이 형성되지 않았소?》

금혁은 가슴이 뜨거워 더운 침만 꿀꺽 삼키였다.

《그러니 금혁동무가 착상한 직화로를 다른 그 누가 대신 완성해줄수 있겠소? 하나의 유기체와 같이 서로 뗄수없이 련결되여있는 그 령감과 흥분과 사색을 누가 대신할수 있겠는가 말이요.》

준석의 목소리는 더욱 열정적으로 울렸고 그에 따라 금혁의 심장도 쿵쿵 세차게 높뛰였다.

《난 그렇게 생각하오. 금혁동무는 자기가 착상한 직화로를 반드시 자기 손으로 완성해 내놓아야 하오. 그러자면… 태아가 세상밖에 나와 고고성을 울리자면 반드시 산모의 진통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그런 고충과 모지름을 각오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관리위원장동지! 제 꼭 해내고야말겠습니다!》

금혁의 신심에 찬 대답이였다.

이날 김준석은 련결농기계공장 당비서와 지배인도 만나 금혁이가 일시 여기로 오게 되였던 사연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떠났다. 그의 이야기에 깊이 감동된 지배인은 금혁이가 여기 있는 동안 직화로를 설계하고 만들어 시험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여주었다.

금혁은 죽으나사나 직화로설계를 완성하는 길이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는 권리를 마련하는 길임을 자각하고 분초를 쪼개여 일하기 시작했다. 피곤한줄도 몰랐고 지치는줄도 몰랐다.

낮에는 주로 공장의 설계들을 보아주는 일을 했고 밤에는 직화로에 달라붙었다.

준석관리위원장은 확실히 금혁에게 석달전 첫 착상의 실머리를 쥐여준 그 령감과 그것이 떠올랐을 때의 흥분을 그대로 되살려준것이였다. 그로부터 분출된 지혜와 열정의 불길이 심신을 태워 그의 사색은 시시각각으로 앙양되여갔다.

마침내 그는 시험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고야말았다. 가스련결이 끊어지는것은 가스로 속통에 공기가 섞여들어가기때문이였다.

이제는 공기가 섞여들어가지 않게 해결방도를 찾아 설계를 개작하면 된다.

바야흐로 열매는 무르익어가고있었다.

한껏 흥분되고 긴장된 심정으로 그는 이미 로출된 출구에로 마지막사색을 몰아가고있었다.

방도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똑똑.》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식당에서 왔는가? 일순 떠오른 생각이였으나 이내 부정해버렸다.

식당에서는 금혁이 아무리 늦어가도 기다렸다가 가마에서 끓는 국을 떠주군 했다. 알고보니 준석관리위원장이 금혁의 식성까지 지배인에게 말해준것이였다.

무심코 일어나 출입문을 열던 금혁은 깜짝 놀라 굳어졌다.

뜻밖에도 수향이가 서있는것이 아닌가.

금혁은 꿈을 꾸는가싶어 안경을 벗었다 다시 끼고 또 보았다. 눈덩이같이 하얀 와이샤쯔에 까만 주름치마를 받쳐입고 꽃보자기를 든 처녀는 분명 수향이였다.

금혁은 한순간 마비되였던 신경들이 풀리며 온몸이 걷잡을수 없게 떨리였다. 그는 입속말을 하듯 가까스로 뇌이였다.

《수향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금혁동무! 시내물은… 바다를 찾아왔어요.》

수향이 이렇게 입속말로 속삭이듯 하며 다가왔다.

금혁은 무아몽중에 처녀를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머리를 돌렸다.

《난 아직 바다가 되려면 멀었소.》

《아니예요. 관리위원장동지한테서 다 들었어요. 동무의 속깊은 마음을 뒤늦게야… 그래서 퇴원하는 길로 이렇게 왔어요.》

그제야 금혁은 꿈에서 깨여난듯 정신을 차렸다.

《정말 몸이 다 나았소?》

《그럼요, 보다싶이!》

금혁은 새삼스레 황홀한 눈길로 처녀의 자태를 훑어보았다. 그를 이끌고 방안에 들어가면서도 꿈이 아닌가싶어 보고 또 보았다. 얼마나 그립고 보고싶던 모습이였던가? 그를 보듯 편지의 글줄을 보풀이 일도록 읽으면서 그리움을 달래온 금혁이였다.

수향이도 정찬 눈빛을 금혁에게서 떼지 않으며 들고온 꾸레미를 원탁우에 올려놓았다.

《오늘 퇴원을 축하해서 아버지가 직접 들고 오신거예요.》

《아니, 당비서동지가?!…》

금혁은 가슴이 뭉클하여 꾸레미를 내려다보았다.

닭곰과 찰떡, 당과류와 과일이 들어있었다.

《자요, 어서 들어요.》

수향이 닭고기를 찢어 보드란 소금에 찍어서 살뜰하게 들려주었다.

《같이 먹자구.》

《아이, 난 두발가진 고기는 못 먹어요. 찰떡을 먹을래요.》

수향은 콩보숭이를 묻힌 찰떡을 저가락에 꿰여들고는 《빨리요.》 하고 독촉을 했다. 금혁이 먼저 먹는것을 보아야 자기도 먹겠다는 성화였다.

금혁은 하는수없이 먼저 고기를 입에 넣고 먹음직스럽게 씹기 시작했다. 그제야 수향이도 떡을 먹으면서 줄곧 금혁을 지켜보는데 그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난 금혁동무가 뭐든지 맛있게 잡숫는걸 볼 때가 제일 기뻐요.》

그들이 서로 권하며 음식을 한참 축냈을 때 수향이 문뜩 생각난듯 물었다.

《직화로설계는 어느 정도 됐나요?》

《마지막 한단계가 남았소.》

《야! 그럼 다 됐군요. 이제 곧 절정에 오르게 된단 말이지요?》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오. 그 한단계가 지금껏 톺아오른 모든 단계들을 다 합친것보다 더 높고 가파로울수도 있으니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기어이 오르겠다는 신심만 있으면야 문제될게 있어요?》

《그럼, 내곁에 수향이가 있는 이상… 난 마음이 든든해!》

금혁은 뜨거운 불덩이같은것을 삼키면서 처녀의 얼굴을 이윽히 마주보다가 불쑥 일어나 설계도면을 가져다놓았다.

《자, 이걸 보라구. 실패의 원인은 이 가스로 속통에 공기가 섞여들어가는데 있었어.》

수향은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오― 그러니까 이 불목에 있는 6개의 바람구멍으로 공기가 과잉돼서 들어간다는 소리지요?》

《옳소. 불목이나 바람구멍의 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요.》

금혁은 이렇게 말하다가 도면우에 티가 앉은것을 보고 입바람으로 후― 불어버렸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였다. 이때 수향이 갑자기 금혁의 팔목을 잡아쥐더니 다급한 소리를 쳤다.

《가만, 다시한번 좀 보자요.》

《아니, 뭘?》

금혁이 얼떠름해하는데 수향은 방바닥을 여기저기 살피다가 검불하나를 집어 도면우에 올려놓았다. 그우에 엎드려 입을 크게 벌리고 《하.》 불어보더니 손벽을 치며 기뻐했다.

《자, 보라요. 요만큼밖에 못 갔지요? 이제 또 보세요.》

이번에는 입을 오무려벌리고 《후―》 불었다.

검불이 멀리로 날아 떨어져버렸다.

순간 금혁의 머리에도 번개치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렇지! 불목과 바람구멍이 넓으니까 가스를 멀리로 쏘아줄수 없었던거야. 그래서 가스련결이 끊어졌고.》

금혁은 흥분하여 부르짖다가 제꺽 연필을 집어 도면의 한곳에 동그라미를 그려넣었다.

《불목과 바람구멍을 좁혀야겠어. 불목이 크면 그만큼 불이 많이 피니까 과속이나 고열현상이 일어날수 있거던. 땔감도 그만큼 랑비될게고.

원동기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용량을 계산해서 기관이 먹을 량만큼만 가스가 생산되게 해야 해!》

혼자소리로 열변을 토하던 금혁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수향이! 이젠 됐어, 됐단 말이야! 하하…》

그는 자기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오른손주먹으로 왼손바닥을 툭툭 쳤다.

잠시후 금혁은 언제 그랬더냐싶게 예리한 눈빛이 되더니 급히 책상앞으로 다가앉았다.

연필이 도면우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향은 슬그머니 떠날 차비를 하였다. 이제부터는 금혁의 사색과 계산에 조금이라도 방해를 주어서는 안되는것이다.

가겠다고 하면 따라나올것만 같아 몰래 움직이기로 하였다. 장난스런 웃음이 처녀의 눈가에 새물거리였다.

종이 한장에 원주필로 《수향이는 선봉리로 떠나요. 설계를 완성하고 돌아올 날을 기다리겠어요.》하고 적어놓고는 보따리를 싸들고 발볌발볌 물러나왔다.

수굿하고 도면개작에 집념한 금혁은 출입문 여닫기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중학시절 아무리 주위환경이 소란해도 눌러박은듯이 한자리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던 그 놀라운 집중력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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