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4 회

제 5 장

순정의 열매

1


소슬한 바람이 불어왔다.

드넓은 평야에 가득찬 벼이삭들이 솨― 파도를 일구었다. 아침의 해빛이 풍요한 벼나락우에 찬연히 비껴갔다. 이삭마다 차돌같이 여문 벼알들을 무겁게 이고 선 벼대들이 바야흐로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며 무겁게 일렁이고있다.

농장원들은 모두 강냉이가을에 동원되고 들판에는 신비로운 고요가 깃들었는데 그 한가운데로 농립모를 쓴 준석이 홀로 천천히 걷고있었다.

마치도 자기가 고심끝에 창작완성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화가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이제 그 창작품에 어떤 평가가 내려지겠는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긴장한 심정이기도 하였다.

오늘 예상수확고판정을 하게 되는것이다.

고향에 내려와 지은 첫해농사를 총화받게 될 관건적인 시각이였다.

논두렁의 콩포기들사이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푸드득 푸드득 메뚜기들이 날아올랐다. 그 말 못하는 곤충들도 풍작이 들었다고 기뻐서 춤을 추는가싶다.

준석은 구수한 낟알향기에 취하여 한껏 심호흡을 하며 그윽한 눈빛으로 벌판을 둘러보았다.

벼바다가 바람을 안고 솨― 물결칠 때마다 준석의 가슴도 함께 설레였다.

과연 이 땅에 바친 나의 땀은 얼마나 되였던가? 이 땅에 묻은 나의 량심과 헌신은 과연 얼마만 한 무게를 가지는것인가?

그렇다. 오늘의 수확고는 이 모든것에 대한 정확한 답으로 될것이다.

준석의 눈앞에는 평양을 떠나온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는 동안 어렵고 힘겨웠던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이름할수 없는 흥분이 가슴을 꽉 메웠다.

그는 논판에 내려서서 탐스러운 포기 하나를 줌에 쥐고 이삭수를 세여보았다.

그 수자만으로도 기대를 가질만 하다.

이제 평뜨기를 해보면 정보당수확고를 예상할수 있게 된다.

준석은 리의 시작인 1, 2반 논벼포전으로부터 시작하여 몇개 작업반을 걸쳐 시험포에 이르렀다.

누렇게 굼니는 벼바다우에 한마리의 불새마냥 붉은 머리수건이 나붓겼다. 수향이가 허리까지 벼나락에 잠긴채 셈세기에 열중하고있었다.

그 모습이 참 시적이여서 준석은 빙긋이 웃음을 머금은채 한동안 지켜보았다.

맞은켠 논배미에서 역시 벼알을 세여보던 리순이가 남편을 띄여보고 땀을 씻으며 나왔다. 까뭇이 탄 얼굴에 웃음이 담뿍 어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을것 같애요. 몇포기 세여봤는데 평당 알수가 작년도의 1.5배가 넘는군요.》

《아니, 그건 최고기록인데? 그 정도면 정당 수확고가 평년을 훨씬 넘는다는 말이 아니요?》

준석은 놀람과 흥분에 가슴이 터질듯 했다.

《관리위원장동지!―》

수향이 챙챙한 소리로 부르며 벼나락을 헤가르고 달려나왔다. 마치도 바다를 헤염쳐 솟구치는 갈매기마냥.

숨을 할싹이며 앞에 다가온 처녀는 어리광치듯 준석의 손을 잡고 깡충거리며 환성을 질렀다.

《관리위원장동지! 대용비료를 듬뿍 먹고 자란 우리 벼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걸 보세요.》

준석은 자기의 손을 잡아끄는 수향을 보고 껄껄 웃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이 땀범벅이 되였으나 그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또 어디 있으랴.

《수향아, 고맙다. 이게 다 너의 이악한 노력의 열매인데 왜 믿어지지 않겠니? 난 대용비료로 지은 농사가 이렇게 잘된게 제일 기쁘구나.

래년도부터는 온 농장이 시험포의 경험을 확고히 일반화할수 있게 됐다. 하하…》

《그러고보면 땅은 정말 진실하구 의리가 있어요. 안겨준것만큼 보답할줄 알구, 땀이 곧 열매로 된다는게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렇지요, 언니?》

《응, 호호…》

수향은 좀처럼 진정할줄 모르고 리순의 손을 잡아흔들며 까르르 웃었다. 준석이와 리순이도 오래간만에 시름을 놓고 활짝 웃었다. 온 벌이 따라웃는듯싶다.

그러자 준석의 가슴은 파도마냥 일렁이면서 저도 모르게 환희의 시구절이 흘러나왔다.


대지여 노래하라

풍요한 가을 네우에 비낀

그 나락의 빛갈로

그 구수한 향기로

그 유정한 설레임소리로

너를 가꾸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어마나!…》

가슴우에 두손을 모두어잡고 어깨를 들먹이던 수향이 탄성을 질렀다.

《야, 관리위원장동진 대학때도 유명한 즉흥시인이였다더니… 아마 문학부문 대학을 다녔으면 지금쯤 큰 시인이 되였을거예요.》

《허허… 아닌게아니라 군대에서 제대될 때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당시)를 추천받았댔지. 그런데 고향에 오니 기뻐하실줄 알았던 아버지가 오히려 섭섭해하시지 않겠소?》

《아이, 어째서요?》

《공부를 해도 농사공부를 하라는거였지. 그것도 우선 농사일을 해보면서 농촌현실을 체험한 다음에 해야 실지 필요한 공부를 할수 있다는거였소. 그래 고향에 돌아와서 이태동안 농사를 짓고서야 농업대학추천을 받았던거요.》

《야, 그랬군요.》

수향은 감동을 금치 못해 눈물까지 글썽해졌다.

준석이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물밀듯이 한꺼번에 떠올라 가슴이 쩌릿해졌다. 아버지가 살아서 무겁게 머리숙인 벼바다를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준석은 흐뭇한 기쁨속에도 은근히 한가닥 불안이 없지 않았다. 실지 결과는 이제 두고보아야 하는것이다.

시험포를 떠나 5, 6반쪽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자신의 우려가 공연한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토질과 물조건, 모내기날자의 차이에 따라 예상수확고가 서로 다르게 나타났던것이다.

한바퀴 돌아 관리위원회에 들어서니 판정성원들인 관리일군들과 각 작업반 기술원들이 모여있었다.

준석은 그들에게 평뜨기에서 지켜야 할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강조하고 작업반들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그자신도 담당작업반인 3반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낯익은 승용차가 마당에 들어와 멎었다. 차에서 내린 대일은 여느때와 같이 호방한 표정으로 널직한 어깨를 활달하게 흔들며 마주와 준석의 손을 잡았다.

《그새 잘있었소? 오늘 예상수확고판정을 조직했겠지?》

《예, 했습니다.》

《오면서 보니 전반적으로 괜찮은것 같던데.》

《글쎄,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지?》

준석은 대일이 진심으로 선봉리를 념려하여 나왔다는것을 고맙게 느끼면서 가슴이 두근거림을 어쩔수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대일은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더니 혼자소리처럼 뇌이는것이였다.

《어떻게든 선봉리가 최고수확을 내야겠는데…》

그 말을 듣느라니 준석이 평양에서 내려온 이후 씨뿌리기때부터 선봉리를 군의 본보기로 내세워주려고 각별히 왼심을 써준 대일의 노력이 새삼스럽게 돌이켜졌다.

대일은 한개 작업반의 판정정형을 좀 보고 가겠다고 하였다.

준석은 자기가 나가려던 3작업반에 그대로 안내하였다. 사실 미리 돌아본 결과는 3반이 그리 앞선 축이 못되였으나 리적인 평균수확고를 예상하기에는 차라리 적합한 대상이라고 생각되였다.

준석은 작업반장, 기술원, 해당 분조장과 함께 포전별, 필지별로 평뜨기를 한 이삭들을 묶어 탈곡장으로 들여갔다. 그것을 훑어 비닐주머니들에 넣고 생중량을 저울에 달아보았다. 그리고 수분측정기로 물기를 빼내고 건조중량을 산출한 다음 전자수산기에 수자들을 때려넣었다.

곧 수자판에 분조의 정당 예상수확고를 종합한 수자가 현시되였다.

작년도보다는 훨씬 높아진 수자라고 기뻐들 하였으나 준석의 어깨는 처져내렸다. 만족할만 한 결과가 되지 못했던것이다. 다른 분조들도 형편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 이 작업반의 예상수확고는 곧 리적인 수확고를 말해준다고 보아야 했다.

준석은 얼굴이 컴컴하게 질렸다.

대일과 함께 관리위원회로 오면서도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괴로운 한숨만 내그었다.

그를 위로하려는듯 대일이 헌헌한 어조로 말을 건네였다.

《너무 락심하지 말게. 그래도 작년보다 20프로나 더 올리지 않았나? 그 악조건에서도 말이야.》

《위원장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그렇게 믿어주고 도와주었는데 보답을 못해서…》

《일없어, 일없다니까. 이거야 말그대로 예상수확고인데 뭘 그리 걱정인가? 다른 작업반들의 수확고도 아직 미지수인거구. 그만하면 신심을 가질수 있겠소. 솔직히 내가 걱정했던것보다는 결실이 썩 좋단말이요, 놀랄 정도로.》

《아닙니다. 사실 욕심같아선 첫해부터 땅이 꺼지게 농사를 짓고싶었는데…》

《괜찮아, 괜찮다니까. 첫술에 배가 부르겠나. 천리길도 한걸음에 시작된다구 그만하면 첫걸음을 큼직하게 정보로 뗐어.》

대일은 성과보다도 부족점을 앞세우고 자신을 허심하게 뉘우치는 준석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혹시 신심을 잃을가보아 다심하게 왼심을 썼다.

머지않아 평양에서 농업부문 일군들의 회의가 열리게 된다.

군에서도 농사를 잘 지은 리의 관리위원장들과 작업반장들이 회의에 참가하게 된다.

대일은 준석을 이미 경험토론대상자로 내정하고있었다.

물론 군적으로 제일 앞선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적은 비료와 연유조건에서 그만큼 농사를 지었다는것은 말그대로 기적이였다.

다른 농장들에서처럼 비료를 더 달라, 기름을 더 달라 우는 소리를 하거나 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그만큼 농사를 지었다는것은 농장의 밝은 앞날을 약속해주고있다는것을 대일은 믿어의심치 않았다.

대용비료와 대용연료연구에서 성과도 컸지만 자체로 농사를 지으려는 준석의 굳은 결심과 완강한 의지, 박정운당비서와 같은 일군들의 뒤받침은 풍년열매를 약속하고있었다.

그래서 군당과 토론하고 우에다 제기를 했는데 뜻밖에도 본인이 완강하게 반대하는것이 아닌가.

대일이 오늘 이곳 리에 내려온것은 예상수확고판정도 판정이지만 준석을 설복하고 내세우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준석이, 그 문제는 락착지은것으로 하자구. 이미 다 제기한 문제인데.》

대일은 준석의 얼굴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하고는 차문을 열었다.

준석은 차문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위원장동지. 사실 올해 농사야 영순반장을 비롯한 농장원들과 일군들이 지은것이지 결코 제가 일을 잘해서 그런것은 아닙니다. 리적인 수확고도 바라던대로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위원장동지, 절 좀 도와주십시오.》

대일은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지만 준석의 눈가에 번쩍이는 애끓는 물기를 분명 느끼고있었다.

《사람두 참, 정 그렇다면 내 군당과 토론하겠소.》

대일은 뒤차창너머로 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윽토록 눈길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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