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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의 길에 영생하는 삶

 

-조국통일상수상자 강태무선생-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였던 강태무선생은 의거입북한 후 조선인민군 군인으로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였으며 생의 말년까지 나라의 번영과 조국통일을 위해 불같이 산 사람이다.

1925년 경상남도 고성군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막내아들로 태여난 그는 일본에서 고학으로 중학교를 나온 후 식민지청년의 불우한 운명을 등에 지고 징용살이를 강요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공화국에로의 의거당시 강태무선생

조국이 해방되자 그는 민족을 위하고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되려고 군복을 입었지만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제주도인민봉기와 려수봉기자들에 대한 야수적인 학살만행과 북침전쟁책동을 직접 목격하면서 괴뢰군살이는 결국 민족반역의 길이라는것을 뼈저리게 느끼였다.

하여 그는 조국과 인민을 지키는 진정한 애국의 군대가 될 결심을 품고 대대장병들과 함께 1949년 5월 진정한 인민의 정치가 실시되는 공화국북반부로 의거입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권총선물까지 받아안은 강태무선생은 조국해방전쟁시기 련대장, 부사단장으로 활약하며 수많은 위훈을 세웠으며 전후에는 려단장, 사단장으로 군사복무의 날을 이어갔다.

주체43(1954)년 7월 어느날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령복을 입은 그가 보고싶다고 하시며 그를 몸가까이 부르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자신께서 리용하시던 승용차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사업하던 때의 강태무선생

그후 그가 건강이 나빠져 제대되였을 때에는 한개 군의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책을 맡겨주시였으며 도와 중앙기관의 책임일군으로까지 키워주시였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은정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한없이 고결한 도덕의리심을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믿음에 의하여 일흔도 넘는 나이에 또다시 군복을 입고 절세위인의 전승업적을 길이 전하는 영광의 초소에 서게 되였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끝없는 사랑과 믿음속에 강태무선생은 김일성훈장수훈자, 조국통일상수상자,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으며 오늘은 애국렬사릉에서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다.

 

오늘 강태무선생의 후손들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에 안겨 생의 자욱을 값있게 빛내인 아버지처럼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중요초소들마다에서 지혜와 정열을 바쳐가고있다.

 

                                                                 강태무선생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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